이제부터 쭉 설명해 드릴게요.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이 자국에서 감염병이 발생했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었는데요. 

중국은 강력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을 포함해 14개 성과 시를 봉쇄해 버렸죠. 

그러니까 아무도 나오지 말고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버린 건데요. 문제는 해당 지역에 우리나라와 유럽, 미국의 자동차 부품 공장이 몰려 있다는 거예요. 

공장이 모두 멈춰서 부품 생산이 안 됩니다. 멈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부품이 공장 바깥으로 나올 수가 없죠. 가지러 들어갈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부품이 없는 우리나라 공장도 모두 멈춰야만 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공장만 멈추나요? 미국 공장도, 유럽 공장도 자동차 공장이라면 모두 자동차를 못 만들게 생겼습니다. 라면을 끓이려는데 면만 있고 수프가 없으면 어쩌겠습니까. 물에 사리만 팔팔 끓여 라면이라고 우길 순 없잖아요.

중국에서 부품이 다시 생산돼서 각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새 자동차를 만들 수 없게 된 거죠.

여기서 글로벌 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즉 가치사슬이 등장합니다. 가치사슬 개념은 중력(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나 빛의 직선운동(빛은 똑바로 가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야)처럼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용어는 아니에요. 컨설팅 회사가 만들어낸 용어거든요.

그런데 이 개념이 현상을 너무 잘 설명한 나머지 전 세계적으로 쓰이게 된 거예요. 마치 빼빼로데이처럼요. 빼빼로데이라는 날은 원래 없었지만, 11월 11일 마케팅을 너무 잘한 나머지 이젠 너무 당연해졌잖아요?

글로벌 밸류체인이 뭐냐면요, 국가 간 분업 체제예요. 중국에서는 부품 A를 몰아 만들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부품 B를 몰아 만들고, 한국에서는 부품 조립을 몰아 하고, 미국에선 신기술 개발을 하는 식인 거죠. 그러니까 팀플 같은 거예요. 

공동의 목표 완성을 위해 너는 자료 조사, 나는 ppt 만들기, 너는 발표 이런 식으로요.

물론, 이 팀플은 흔한 대학 팀플이 아니라 정예부대입니다. 각 분야의 마스터들만 모여 있죠. 우승하면 글로벌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가 보장되는, 엄청난 공모전을 위해 모인 드림팀이거든요. 그러니까 모두가 자료조사, 취합, ppt 작성, 리포트 작성, 발표까지 다 같이하면 결과가 영 안 나옵니다. 

대신 각자 제일 잘하는 분야를 맡아 최고의 결과를 낸 뒤 합치면, 짜자잔 하고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생겨납니다. 그게 바로 글로벌 밸류체인이죠.

일본이 반도체 재료 수출을 막겠다고 했을 때 세계가 일본 편을 안 들어준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공모전 중에 갑자기 팀원이 ‘ppt 만드는 애가 나랑 데이트 안 해주면 자료 안 넘겨’ 라고 했다고 쳐볼게요. 반도체 가치사슬 팀플 팀원들은 모두 경악을 하게 되겠죠.

일본에게는 자료를 넘기라고 하고, 우리나라에게는 일본이랑 한 번만 데이트해주면 좀 어떠냐고 하고, 뭐 그렇게 된 거예요.

이 가치사슬 팀플은 좀 무섭습니다. 멤버가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성과가 안 나오면 팀에서 나가야 해요. 현재 팀원보다 프리랜서인 다른 사람이 발표를 더 잘한다고 하면 당장 팀원을 쫓아내고 프리랜서를 데려옵니다.

필리핀에 공장을 몽땅 지었었는데, 베트남 인건비가 더 싸다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2년쯤 지나면 필리핀에 있던 공장이 다 베트남에 가 있습니다. 필리핀엔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고 베트남은 갑자기 경제가 성장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무서운 점이 있습니다. ppt를 엄청나게 잘 만드는 팀원이 있다면, 그 팀원보다 ppt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쫓아낼 수 없어요. 심지어 각종 범죄를 저질러도 못 쫓아냅니다. 

이를테면 중국의 IT기업인 화웨이가 제품에 해킹프로그램을 심어 개인정보를 중국 정부에 빼돌렸다는 의혹이 있더라도 대응이 어렵죠.

그리고 하나 더. 자료조사를 잘하는 사람은 널려 있지만, 발표를 잘하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발표멤버로 들어오면 철밥통이 됩니다. 미국 같은 존재인데요. 각종 과학기술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나라는 없다고 봐야 하거든요.

미국이 기술이 좋으니까 전 세계의 우수한 사람들이 미국으로 기술을 배우러 옵니다. 점점 더 미국에는 인재가 늘어나고, 기술은 더 발전하죠. 그러니까 또 인재가 오고요. 미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봉도 높게 받고, 복지도 좋습니다. 

반대로 자료조사 분야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 분야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저는 최저시급만 받고 일해도 되는데요!’ ‘저는 주말 출근도 가능합니다!’ 하면서 출혈경쟁을 하게 됩니다. 일단 팀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선진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가져가고 개발도상국은 돈은 안 되고 환경오염물질은 많이 배출하는 공장을 가져가게 됩니다. 

또 선진국의 저임금 저학력 노동자들은 개발도상국에 일자리를 많이 빼앗기고, 개발도상국의 고학력 노동자들은 실력을 펼치지 못하든가 선진국에 이민을 와야만 전공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체제가 굳어집니다. 솔직히 지금 누가 미국을 넘어서겠어요. 그래서 세계 불평등을 고착시킨다는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세계 경제는 각 산업분야별 가치사슬을 통해 굴러가게 되어 버렸습니다. 팀원이 되지 못하면 국물도 없는걸요.

공모전의 좋은 성적이 가져다줄 상금 등등은 물 건너 가는 것이죠.

자동차산업이라는 가치사슬 팀플에서 부품 생산을 맡고 있던 중국이 기절하는 바람에 전 세계 자동차산업이 멈춰버렸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자동차산업, 그러니까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경제에 한 방 크게 얻어맞게 생겼죠.

물건을 못 만들면 물건을 못 팔아서 월급이 안 나옵니다. 물건을 만든다고 해도 중국의 영향을 받는 다른 나라도 돈이 없어서 우리 차를 못 사줍니다. 내수와 수출에 동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죠.

중국의 기절이 오래가면 우리나라 부품 업체들은 줄도산할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에게도 미치는 영향이지만, 주식과 무역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악영향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