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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FEB. WINTER LETTER


김겨울  Kim Winter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라디오를 진행한다. 유튜브 <겨울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MBC 표준fm의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DJ이며 <책의 말들>을 비롯한 몇 권의 책을 썼다.


작은 목소리

뉴욕을 걷고 있어요. 조금 어색해 하면서.

맨해튼의 중심지를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이틀 만에 적응된 맨해튼의 속도에 맞춰 저벅저벅 걷고 있는 발에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가 신겨 있어요. 나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아웃렛에서 코트를 입고 집 앞 패스트패션 상점에서 대충 털 모자를 눌러 스물 살의 초보 여행자입니다. 어설퍼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은 가방을 메고 손에 커피까지 들었건만 빠른 걸음 안에도 어설픔이 비치는 같습니다. 블록 형태로 규격화된 주소 체계 덕에 종이로 지도를 손에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네요. 지도까지 들었다면 영락없는 어린 초보 여행자였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문제 될 없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야말로 영락없는 어린 초보 여행자의 특징입니다.

겨울 뉴욕의 거리에서 ⓒprintbakery

뉴욕 셋째 날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겨울에 큰마음을 먹고 혼자 뉴욕을 여행하기로 했어요. 처음 하루는 동쪽 끝 몬탁에서 보내고, 이틀째부터 맨해튼을 돌아다녔습니다. 첫날을 몬탁에서 보낸 이유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때문이었습니다. 아직은 취향을 찾아가던 이십 대 초반, 그때까지 봤던 몇 안 되는 영화 중 마음에 남은 것이 <이터널 선샤인>이었거든요. 핸드폰 케이스도 <이터널 선샤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디자인의 것으로 하고 다녔습니다. 잠시 주어진 방학 동안 다들 라스베거스로, LA로, 샌프란시스코로, 심지어는 미국 동부 투어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동안 저는 얼마 없는 돈으로 딱 한 군데를 골랐고, 그게 뉴욕이었고, 정확히는 몬탁이었습니다.


하루를 몬탁에서 보내고 나서는 내내 영화의 감상에 휩싸여 있었던 같습니다. 나의 기억은 무엇일까? 나의 어리석은 삶은 어떻게 망각될까? 작은 가방에 카메라와 노트, 연필을 가지고 다녔어요. 맨해튼에 체크인한 유스호스텔에서는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고요. 거의 하루 종일 음식 주문 말고는 말을 일이 없었습니다. 성능이 엉망인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느라 길을 잃었고, 돈이 없는 탓에 유명한 곳이나 맛집을 골라 다니지도 못했어요. 저는 위축된 상태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걸으며 보냈고, 사진과 글을 실컷 남겼습니다. 계속 뭔가를 쓰거나 찍었어요. 그게 제가 이곳에 스며들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이곳에 유일한 이유라는 듯이요.


길을 잃는 여행자에게 계획은 사치지만 그래도 들러야 곳이 있었습니다. MoMA, 그러니까 뉴욕 현대미술관이요. 고흐며 샤갈이며 폴락이며 하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도, 6 규모의 미술관과 디자인샵도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니 이날은 미술사 책만 죽어라 읽던 책순이가 작품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는 중요한 날이었다고 있겠습니다.

The Museum of Modern Art(MoMA) ⓒprintbakery

느긋하게 일어나 숙소 앞에서 미드타운 쪽을 향하는 버스를 아무거나 잡아탔습니다. 11 West 53 Street. 맨해튼을 가로로 자르는 스트리트는 아래쪽부터 순서대로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밑에서 53번째 길에 미술관이 있어요. 그 근처에는 트럼프 타워도 있고 록펠러 센터도 있지만 스물한 살 때는 그런 것이 있는 줄 전혀 몰랐습니다(알아도 가지 않았을 테지만요). 여행 책과 블로그에는 자연사 박물관도 추천되어 있었지만 역시 별로 가볼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버스에서 내려 미술관을 향해 걷는 동안 저는 여전히 가방 안에 든 카메라와 노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 안에서 촬영이 가능할까요? 제가 찍고 싶은 것은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찍고 싶은 것은 공간과 사람들이에요.


도착해 티켓을 끊고 팜플렛을 뽑으니 안내 데스크의 직원분이 6층부터 내려오면서 관람을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6층의 쿠닝 특별전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 김이 샜지만, 첫날 만난 몬탁의 햇살을 다시 만날 있어 기뻤어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여행의 시작과 관람의 시작이 같네. 몬탁에서 멀지 않은 햄튼 지역에 살던 쿠닝은 몬탁의 쏟아지는 햇살을 기록해두었더랬습니다. 햇살의 온도를 품은 채로 5층에 내려오면서,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이제부터가 관람의 시작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printbakery

다른 사람들이 관람하는 속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속도로 걸어요. 그림을 관람하는 만큼이나 공간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림을 찍는 동안 저는 그림을 찍는 사람들을 찍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을 둘러싸고,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디오 해설을 듣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그림을 가지고 재치 있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유난히 오랫동안 머무릅니다. 모두가 손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다. 10년 전의 핸드폰 카메라는 참도 화질이 나빴을 텐데, 그래도 사진을 남기면 기억도 함께 남는 법이니까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저 사람은 어디서 왔을까, 저 사람들은 어떤 관계일까, 그런 생각을 혼자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저도 모네의 거대한 <수련> 연작 앞에서는 잠시 남들처럼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요.

The Museum of Modern Art(MoMA) ⓒprintbakery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2층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이미 반나절 정도가 지나 있었습니다. 피로한 다리를 끌고 걸으면서도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2층에서는, , 바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삶의 틈새를 잡아내는 일이요. 그토록 바라보던 사람들 누군가가 신호를 터뜨리는 순간이요. 사건은 이러했습니다. 미술관 곳곳에는 경비원들이 있었어요. 경비원들은 사람들에게 핸드폰 플래시를 끄라고 말한다든지 혼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든지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층의 전시실 한구석에서는 쉽게 알아차릴 없는 작은 목소리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아뇨, 배경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어요. 블루스 스타일의 음악이었습니다. 노래를 하고 있는 사람은 경비원이었습니다.


저는 경비원에게 다가가그날 처음으로말을 했습니다. “목소리가 좋으시네요.” “고맙습니다.” 그 대화를 하는 동안 아무도 저희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저는 그 순간이 결코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저의 어설픔과 어리석음도 그 시간과 공간에 그대로 박제될 것임을,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십 년이 흐른 겨울에도 저는 여전히 그날의 어색함을 무사히 소환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저의 어설픔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왜 노래를 하고 있었을까요? 지겨운 시간을 노래로 보내는 것이 그의 업무 요령이었을까요? 아니면 그에게 다른 직업이 또 하나 있었던 걸까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을 질문을 허공에 던지며 그날의 저를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보냅니다. 이 뚝딱거리는 친구를 긍휼히 여겨주세요. 그가 어느 순간 삶의 특별한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For your wonderful winter.
계절의 경계에서 당신께 편지를 띄웁니다. 겨울의 이름을 담은 편지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나눈 온기로 올 한 해를 안녕히 지내길 바라봅니다. 

모든 예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봅니다. 그림을 통해 사람과 삶, 나를 만난 9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2월부터 3월까지, 겨울과 봄 그 사이에, 매주 금요일마다 당신의 편지함으로 찾아갑니다. 답장을 써보내주셔도 좋아요. 우리 함께 예술의 찬란함을 느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 진실한 삶의 행진, 아티스트 마이큐의 미술 취향

마이큐는 음악과 미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잔잔하지만, 결코 단순히 흐르지 않는 감정들이 마이큐의 시선으로 걸러져 세상에 새겨졌습니다. 자신 안의 고인 것들을 '마이큐 답게' 풀어가는 아티스트 마이큐, 그는 과연 어떤 미술 취향을 가지고 있을까요? 


‘바우하우스(Bauhaus)’를 생각하면 각자 머릿속에 이미지 하나씩을 띄우게 됩니다. 하나의 단어보다 어렴풋한 이미지 정도입니다.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뜻이겠죠.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존립했던 바우하우스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 너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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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세연  DESIGNER 제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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