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뜬 소문 사이, 꾸며낸 이야기 속 숨은 진실 소설 <대불호텔의 유령>
<대불호텔의 유령>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액자식 구성으로 볼 수 있어요. 1부의 주인공 ‘나’는 마음 속에서 ‘악의’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와 괴로워하는 소설가죠. 집필에 몰두하려 할 때마다 ‘악의’가 날뛰어 단 한 글자도 못 쓰던 중, 엄마 친구인 ‘보애 이모’네 가족들의 이야기에 이끌리게 돼요. 그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2부의 내용이죠. 3부에서는 다시 ‘나’의 시점으로 돌아와, 과연 이 기묘한 이야기가 실제인지,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일지 혼란스러워해요.
소설의 메인 디쉬는 사실상 2부라고 할 수 있는데, 시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을 비롯해 화자까지 갑자기 확 뒤바뀌게 돼요. 1950년대 인천항을 배경으로 주인공 ‘지영현’의 시점으로 서술되죠. 해방 이후의 혼란기를 어렵사리 살아낸 사람들의 머리 위로 전쟁과 이념 대립이라는 먹구름이 들이쳤던 시기였어요. ‘지영현’은 마을에 급습한 폭격으로 인해 모든 가족을 잃고 인천항으로 대피하는데, 이후 ‘대불호텔’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 나가게 돼요.
안타깝게도 ‘대불호텔’은 평범하지 않은 곳이었죠. 호텔에서 일하는 ‘고연주’는 ‘귀신 붙은 여자’라는 소문을 달고 있거든요. 건물주 ‘차오’는 장정들을 불러 ‘고연주’를 내쫓으려 하지만, 그때마다 남자들은 ‘고연주’가 머무는 3층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거나 목뼈가 꺾여 죽어요. 결국 ‘차오’는 ‘고연주’에게 숙박업을 운영하게 하고, ‘귀신 들린’ 호텔은 항구를 드나드는 뜨내기 외국인 손님들만 받게 되죠. 그러던 중 ‘셜리 잭슨’이라는 한 미국 여성이 장기숙박을 하게 되고, 호텔에서 기이한 현상을 겪게 돼요.
밤마다 침대 밑을 긁는 소리, 아무도 없는 방안을 누군가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소리, ‘악의’가 가득한 목소리들을 듣게 되죠. 놀랍게도 그 현상은 옆방에 머무는 ‘고연주’도 겪고 있었고, 호텔 건물 1층에 위치한 청요릿집 ‘중화루’의 종업원 ‘뢰이한’도 겪고 있었어요. 건물에 지내는 사람 중 유일하게 ‘지영현’만 기현상을 모른 채 지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죠.
‘지영현’은 ‘고연주’와 ‘뢰이한’이 무언가를 꾸며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고연주’ 역시 ‘지영현’의 존재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하죠. 떠도는 소문은 진짜일까?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진실인가? 이들은 왜 계속 여기에 머무는가? 답 없는 질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네 인물은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죠.
소설 속 내용은 모두 허구이지만, 놀랍게도 ‘대불호텔’은 실존했어요. 1888년 인천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죠. <대불호텔의 유령>의 묘미는, 우리나라라기엔 너무나도 이질감 느껴지는 배경과 인물들에서 오는 기묘한 분위기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묘한 현실감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게 신기했죠. 그런데 알고보니 실존했던 공간을 베이스로 했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진짜와 가짜, 실재와 허구, 묘한 경계 위에서 칼춤추는 소설!
p.s. 무서움을 기대하고 읽진 마세요. 전 엄청난 쫄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