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엔저’ 때마다 수출로 더 벌었어 엔화 가치가 떨어졌을 때마다 수출이 늘어나서 해외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졌다는 점도 일본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힘이었어요.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높아져요. 예를 들면 ‘1달러=100엔’이었던 환율이 ‘1달러=120엔’이 되는 거예요. 이러면 외국에 수출을 하고 달러로 대금을 받았을 때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겠죠. 똑같이 100달러를 받아도 1만엔이 아니라 1만2천엔을 벌게 되니까요.
그래서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과거 엔저 현상이 일어났을 때 무역에서 큰 폭의 흑자를 냈고, 기업 가치가 오르면서 주식 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어요. 이러면 곧 엔화 가치가 하락을 멈추고 적정 수준에서 유지되곤 했죠.
이런 이유 때문에 일본 정부는 오히려 엔저 현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어요. 2013년부터 아베 정권이 시작한 ‘아베노믹스’ 정책이 대표적이에요. 아베노믹스는 기준금리를 ‘0%(제로)’ 수준으로 낮춰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업 수출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중앙은행이 정하는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에서 예금이나 대출 이자율도 함께 낮아지는데요, 이러면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예금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어서 ‘돈 풀기 효과’가 나타나요. 앞서 설명한 ‘확장적 재정정책’처럼 돈을 푼다는 뜻에서 이런 저금리 정책을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부르죠. 일본은 여러 측면에서 돈을 푸는 정책을 펼쳐 온 거예요.
③ 해외에 가진 자산도 넘쳐
일본이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가 30년째 전 세계 1위를 지킬 만큼 막대하다는 점도 중요해요. 가진 게 워낙 많다는 점은 일본 경제가 아직 안정적이고, 엔화도 여전히 안전자산이라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지난 2020년 기준 일본 정부와 기업, 개인이 해외에 보유한 순자산(자산-부채)은 356조9700억엔(약 3515조원)에 달했어요. 일본인이 외국 회사나 부동산, 주식, 채권 같은 걸 엄청나게 사서 갖고 있다는 거죠. 이걸 ‘대외 순자산’이라고 부르는데, 워낙 이 금액이 크다 보니 이 자산들로부터 꾸준히 발생하는 수익도 커요.
일본의 대외 순자산 규모가 큰 건 투자 광풍이 불었던 1980년대 후반 ‘경제 버블’ 시기에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까지 적극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에요. 그 덕에 거품이 꺼진 이후에도 30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죠.
막대한 해외 자산은 일본 기업들의 수출이 주춤할 때 버팀목 역할을 했어요. 앞서 언급했던 ‘엔저 현상->기업 수출 증가’ 흐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다가 둔화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이후에는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빈자리를 메꿨어요. 수출로 돈을 좀 못 벌어도 각종 자산에서 올린 수익까지 따지면 결국 일본에서 빠져나가는 돈보다 해외로부터 벌어들인 돈이 많았어요.
📌이제 달라졌어! 일본도 예전 같지 않아
쭉 살펴본 근거들을 보면 일본 경제는 꽤 탄탄해 보이는데요, 일본 화폐인 엔화도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받는 게 맞는 것 같고요. 그런데도 엔저 현상을 두고 위기론이 들려오는 이유는 ‘예전과 달라진 점들’ 때문이에요.
① 안전자산이라며? 떨어지는데?
기본적으로 안전자산은 국제적 혼란이나 위기 상황에선 찾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경향을 보여요. 그래서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거죠. 일본 엔화는 국제적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가치가 높아지곤 했어요. 실제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1달러=110엔’ 정도였던 엔화 가치는 약 4개월 만에 ‘1달러=80엔’ 수준까지 급등했어요.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적 혼란이 발생한 최근에는 달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