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하루 늦은 목요일에 수요랩레터를 보내는 LAB2050의 윤형중입니다.
고백합니다. 저는 김육정책연구소의 대표를 겸하고 있습니다. 김육정책연구소는 제가 프리랜서 정책연구자 시절에 용역 사업을 위해 만든 임시 법인입니다. 발주처의 요구로 급작스럽게 사업자 등록을 하며 작명을 고민했는데요. 제가 하려는 일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일지 짧게 나마 숙고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이름이 바로 '김육'이었습니다.(물론 지금 김육정책연구소는 휴업 상태입니다.)
잠곡 김육(1580~1658).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재상으로 알려졌지만, 저는 불굴의 정책연구자이자 연구활동가, 정치의 진정한 역할을 고민했던 경세가라고 부릅니다. 김육 선생에 대해 수다를 떨자면 하고픈 얘기가 너무 많은데요. 간추려 가장 대표적인 업적을 꼽자면 조선 시대 최고의 조세 개혁인 '대동법'을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확대한 것입니다.
대동법은 지역의 특산물을 조정에 바치던 '공납'과 각종 잡세를 통일해 토지 면적에 과세하는 새로운 조세 제도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부자증세이자 서민감세'를 동시에 시행한 제도이고, 복잡하고 불공정한 조세 제도를 단순하고도 공정하게 뜯어고치는 세금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서민들이 가혹한 세금에서 벗어났고, 국가 재정이 튼튼해지면서 병자호란 이후의 정국을 수습하고 민생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동법의 설계자가 아니지만, 임진왜란 이후 경기도에서 시행된 대동법을 곡창지대인 충청도로 확대했고, 전라도로의 확대 시행을 위해 죽기 직전까지 노력했습니다.
당시 조정은 논의의 구조가 지금의 국회보다 나빴습니다. 대동법이 시행되면 세금을 더 내야하는 관리들로 꽉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그는 노련한 정치적 수완과 불굴의 의지로 돌파했습니다.(물론 아주 오래 걸리고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는 정책의 디테일에도 강했습니다. 그가 병상에 누워 마지막까지 한 일이 전라도에 대동법이 시행하게 되면 거두게 될 쌀을 보관하고 운송하는 조운체계를 정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육 선생은 대동법 외에도 화폐 유통, 수차와 수레 도입, 더 정확한 달력인 시헌력 도입에 앞장서면서 사변적인 논쟁이 주를 이루던 조선 조정에서 민생 정책에 진력한 경세가였습니다. 김육 선생에 대한 설명은 이만 줄입니다.(더 알고픈 분들은 따로 알려주세요. 김육의 청년기와 정치적 수완 등 재미난 얘기가 무궁무진합니다.)
김육 선생의 얘길 꺼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도 대동법과 같은 세금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출생, 불평등, 지역소멸, 기후재앙에 대응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기 위해선 당연하게 돈이 필요합니다. 소득과 재산을 따지지 않고 사람에게 부과되던 공납을 폐지하고, 땅을 가진 양반들에게 세금을 거뒀던 대동법처럼 지금도 적절한 조세 개혁을 통해 시대적 과제에 맞설 정책의 재원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조세개혁 자체가 민생을 개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동법 시행 이전엔 많은 이들이 지역에 나지도 않는 특산물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던 공납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었었죠. 비합리적인 제도를 통해 이득을 얻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역의 부패한 관리들과 유착한 상인들이 대표적이었죠. 이들은 공납으로 납세해야 하는 물건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했죠.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세금은 모든 소득에 공정하게 거둬야 하고, 소득이 많을수록 부담이 커야하는데요. 복잡한 비과세·감면 제도들은 분명 소득이 많을수록 혜택이 많은데도 줄어들기는 커녕 늘기만 합니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 비해 부동산과 주식 매매차익, 임대소득 등에 대한 과세는 미진하기만 합니다. 물론 원칙만 강조해선 원칙을 현실화할 순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뼈저린 교훈을 얻었죠.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한 디테일과 이상을 현실의 정책으로 만들 전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세금 개혁은 지독히도 공론화가 되지 않거나, 자주 원칙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의제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금을 더 내게 될 사람들이 강력 반발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세금을 더 내지 않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돌파하려면 공정한 과세, 지금보다 더 거두는 세금의 효용을 많은 이들이 느껴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이니 당연하죠.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지만, 정책 연구자들은 해야할 일을 '어떻게' 현실화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저도 탐색과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2019년 이원재 전 대표,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승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함께 기본소득 모델과 재원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기본소득이 조세 개혁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란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썼던 글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조세개혁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끝난 직후엔 부동산 보유세 논란을 총정리하고, 조세 저항을 완화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보유세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 부동산 보유세 포기해야 할까?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 보유세, 잘만 활용하면 의미 있다
지독히도 의제가 되지 않고 있지만 실은 정말 중요한 의제인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었죠.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4) 세금 제도가 단순해야 하는 이유
윤석열 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을 '역진적 특혜 감세'라고 지적하고, '따뜻한 냉커피'에 비유하기도 했었습니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7) 세상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세제 개편
[얼룩소] 불평등을 완화하는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조세 개혁은 구조적 문제 뿐 아니라, 시급한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2022년 7월부터 횡재세 논의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5) 물가 대책에 횡재세·대중교통 지원 정책 활용하자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3) 횡재세는 반시장적 제도인가
최근 화제가 된 금융투자소득세 논의에도 2022년 12월부터 참여했습니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4) 금투세에 대한 새로운 제안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9)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시키는 금투세 발표
[윤형중의 정책통] 금투세 발표,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도
세금 혜택(조세지출)을 통한 적극적 정책의 사례로 고향사랑기부제를 꼽기도 했습니다. 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지역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6) 고향사랑기부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
역대 최장기간 유지하고 있는 유류세 인하,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조세재정체계의 문제점을 꼬집고, 독일의 9유로 티켓과 같은 전향적인 정책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었죠.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24) 왜 유류세 내리면서 대중교통비 올리나
[윤형중의 정책통] 유류세 인하의 이면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뜻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분석과 제안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함께 논의하고 가다듬고 싶어서입니다.
정책연구자, 연구활동가들이 모여서 작은 시도들을 이어갈 수만 있다면 김육 선생처럼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LAB2050이 그런 정책연구자, 연구활동가들의 진지가 되려고 합니다.
다음주엔 수요일에 제대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잠곡 김육 선생의 일생은 이전엔 여러 단행본, 논문, 사료의 일부로 살펴볼 수 있었으나, 고려대 경제학과의 이헌창 교수가 2020년 2월 출간한 <김육 평전>을 통해 그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육 선생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이 평전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