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옵니다. 아침과 밤도 많이 쌀쌀해지고 있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여섯 번째 ‘마친배우미’ 소식은 유독 특별합니다. 주인공인 노디(이윤선)를 보기 위해 충청남도 홍성에 새벽 기차를 타고 다녀왔거든요. 한배곳 1기인 노디는 공기 좋은 홍성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어요. 유기농으로 정성 가득 들여 갖가지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 ‘채소생활(VegeLab)’의 운영자로 말이죠. 자연 그대로 풀과 줄기가 달린 당근의 모습에 매료된 이후 땀 흘려 일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노디의 특별한 채소생활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노디. 아침이 꽤 쌀쌀하지만 공기가 참 맑네요. 졸업 후 훌쩍 홍성에 내려온 계기가 궁금해요. 한배곳 마지막 학기 때 졸업을 앞두고 1주일에 2-3일 정도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하는 회사 교육팀 소속으로 일을 병행했어요. 홍성에서 예정된 워크숍 사전 답사에 팀원들이 동행하자고 해서 홍성에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제 삶의 장소가 되었네요.그때 처음 홍성과 연을 맺게 된 건가요?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어요. PaTI에 입학하기 전에 지금 함께 일하는 농부 선생님이 인턴을 구한다고 지인이 홍성에서 생활해 보는 것을 제안한 적이 있어요. 지인이 말하길 농부 선생님이 타샤 튜더의 책을 가지고 있었다고 표현을 하더라고요. 저는 타샤 튜더 할머니의 자급자족적인 라이프 스타일과 미국의 관광명소로 지정된 아름다운 정원을 죽기 전에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뭔가에 이끌리듯 홍성을 찾아 선생님을 처음 뵈었는데 그때 하신 말씀을 들으니 제가 올 곳이 아니더라고요. 농업에 환상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농사 짓는 사람은 해의 주기에 자기 리듬을 맞춰서 하루하루 살아야 해요.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니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일을 해야 하죠. 지금은 이런 자연의 흐름에 맞추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불가능하다는 생각만 들었죠. 게다가 여기저기 보여주시며 소개를 하시는데 타샤 튜더 할머니의 아름다운 정원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는 거예요. 그제서야 타샤 튜더 할머니가 얼마나 부지런하게 그 정원을 가꿔오신 지 알게 되었고, 반성이 되었죠. 그 길로 인턴 생각은 접고 PaTI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한배곳 졸업 직전에 다시 들렸다가 결국 이곳이 보금자리가 됐네요. 네 맞아요. 졸업을 앞두고 방문한 날 농부 선생님 농장에 구경갔는데, 거기에 당근이 있는 거예요. 자연 상태를 고스란히 지닌 당근을 그때 처음 봤어요. 마트에 가면 잎 잘린 당근만 있는데 잎이 오롯이 달린 당근을 보니 첫인상이 ‘너무 예쁘다’였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데요. 내가 먹는 음식의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에 솔직히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그리고 그때 동생이 독일에서 유학 중이라 주변 분들이 제게 독일 유학을 추천하곤 했어요. 여러 가지 고민이 들어 머리가 혼란스러웠는데 예전에 미대 입시 준비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시 호주에 다녀온 게 생각났어요. 당시 내가 마주한 문제를 회피해 호주로 도망친 거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이번에도 만일 독일에 가면 예전과 똑같은 선택을 하는 거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제는 현실적으로 마주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남들 보기에는 독일에 가는 게 멋진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저 개인의 삶을 반추할 때 의미가 없겠더라고요. 게다가 그 예쁜 당근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걸 직접 기르고 먹는 일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그 후 머릿속에서 홍성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요. 결국 졸업 전시를 마무리하자마자 홍성으로 내려오게 되었죠. <채소의 감각> 설치 전경, 2016, PaTI 졸업 작업 마음먹고 홍성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한 일이 궁금해요. ‘채소생활’을 기획해 시작했는데 지금과는 조금 결이 달라요. 현재의 채소생활이 작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때는 채소에 대한 보통의 생각―예를 들어 몸에 좋으니 먹어라―에서 벗어나 채소의 숨겨진 아름다움, 채소가 가진 이야기, 먹는 방법 등 채소라는 오브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다루고 싶었어요.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마주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했어요? 처음에는 PaTI 동기인 해지와 함께 ‘채소박스’를 기획하면서 채소와 관련된 콘텐츠를 잡지 형식으로 풀어볼까 생각했어요. 일본에는 <타베루 통신>이라고 농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잡지가 있어요. 매호 특정 농부를 찾아가 그 사람이 생산하는 작물을 기르는 내용이 나오고, 부록으로 그 농장에서 재배한 작물을 나눠주는 콘셉트죠. 여기서 영감받아 저희는 채소박스에 농장에서 생산하는 작물을 담고, 인터뷰와 작물 설명, 작물로 가능한 요리법,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스를 첨부해 판매하려고 했어요. 가공식품 만들기와 지역 농산물의 큐레이션도 포함해서요. 저희가 생산하는 주 작물이 샐러드 채소였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가공품이 들어가게 되었죠. 추석 즈음 햅쌀이 나올 때에는 지역의 논 농가와 함께 햅쌀 특집으로 비빔밥 같은 메뉴를 제안하기도 했고, 지역 생협 매장에서 판매하는 비빔면을 넣어서 채소 누들, 채소 비빔면을 만들어 먹는 박스를 구성했어요. 사람들에게 채소 먹는 법을 지속적으로 제안하는 서비스가 되고 싶어서 ‘구독’이란 표현을 썼죠. 여름에는 옥수수 맛을 제대로 전달하려 직접 찌고 냉동 포장해서 보내고 토마토와 케일을 손수 착즙해 냉동시킨 후 냉매 대신 주스를 넣었어요. 근데 채소 기르는 일만으로도 체력적인 한계가 오는데 농장에서 스튜디오로 돌아와 가공까지 하려니까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더라고요.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방식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공품을 줄이면서 없애게 되었고 대신 자체 생산하는 작물 위주로 박스를 구성하기 시작했어요. 비닐이 한 겹인 1중 하우스에서 비닐이 세 겹이라 전보다 6~7도 높게 보온이 가능한 3중 하우스로 온실 시설을 정비하는 것과 맞물려 가능하게 된 일이기도 했어요. 채소를 제안하는 콘셉트와 구독이란 표현은 지금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답니다. 채소생활 로고 및 첫 구독 홍보물, 2017 (멋지음: 정해지) 실제 겪은 농촌의 삶은 어떻던가요? 제가 홍성에 내려온 게 2017년 1월 중순이라 그 해 농사를 모두 경험했어요. 여름에는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해가 일찍 뜨니까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면 오전 8시만 되어도 더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때부터 3시까지는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다시 4시부터 6시까지 농장 일을 하면 저녁에 먹고 싶은 게 없을 정도로 식욕이 떨어져서 살이 쭉 빠질 정도였죠. 제가 원래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매일 잠이 쏟아져서 낮잠도 많이 잤고, 저녁에 맥주 먹고 잠드는 게 일상이었어요. 노동 강도가 높은데 어떻게 버틸 수 있었어요? 그때는 토마토를 기르고 있었는데 판로가 없으니까 농장에서 기른 토마토를 제가 먹던가, 가공식품으로 처리해야 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직접 기른 토마토를 수확해서 파스타로 바로 해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날의 풍경, 햇빛, 파스타를 먹으며 보았던 영화의 내용까지요.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훌륭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웃음). 그해 제가 좋아하는 찰옥수수가 맛있게 풍작이 되어서 무척 기쁘기도 했고요. 이런 소소한 수확의 기쁨 때문에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특히 농촌은 겨울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점점 천천히 흐르거든요. 저희가 채소를 키우기 때문에 하우스 재배를 하지만 워낙 날씨가 추워서 겨울에는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9~10시에 일을 시작해요. 낮은 온도 때문에 채소 자라는 속도도 느리고요. 덕분에 할 일도 줄어드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자연에 맞춰 사는 게 농촌의 매력인 걸까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영등포에 도착해 도시 풍경을 보니 눈이 아프고 정신이 없었어요. 큰 건물과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며 농촌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었고, 비로소 적응할 수 있었어요. 생산과 판매에 모든 시간을 집중하니 이제 상황이 좀 나아졌나요? 여러 면에서 좋아졌죠. 처음보다 더 좋아진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판로가 없어서 노력이 많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생산에 집중하고 우리가 생산한 채소만 판매하면서 절차를 간소화하니까 일을 끌어가는 데 좀 더 수월해졌어요. 노동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들죠. 대표적으로 농부 선생님과 저, 두 명의 역할이 뚜렷해졌어요. 처음에는 농업 양부터 시작해 수확, 판로 개척, 배송 관련 사항까지 동일하게 배분해서 함께 일했는데, 지금은 서로 특화됐어요. 농부 선생님은 작물 재배와 농장 관리에 집중하시고, 저도 거기에 함께 참여하지만 고객 관리, 수확, 배송 관련에 좀 더 신경 쓰게 됐죠. 기르는 작물 종류도 훨씬 더 다양해졌고요. 처음에 주로 기르던 작물은 샐러드 채소였는데 양상추, 양배추, 오크, 다양한 로메인, 토스카노 케일, 잎 케일, 샐러리 등의 엽채류에 애호박, 감자, 가지 등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채소로 시작했죠. 제가 예뻐하는 당근도 마트에서 주로 파는 품종이 아니라 베이비 당근, 보라당근, 노랑당근 등을 키웠어요. 지금은 스틱 브로콜리, 방울다다기양배추(브뤼셀), 고깔 양배추, 적양배추, 꼬꼬마양배추부터 시작해서 껍질째 먹는 완두콩 품종인 슈가스냅, 스노우피 골든, 퍼플, 그린, 콜리플라워도 노란색, 보라색, 비트는 골든 비트, 타겟 비트, 베이비 비트, 블레임 비트, 당근은 모큠, 애들레이드, 퍼플 엘리트, 골든 너겟, 와잇 샤틴 등 채소 품종과 색의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은 농장을 최적화하기 위해 지금껏 재배해 왔던 작물 중 저희와 맞는 채소 위주로 작부를 짜고 있어요. 채소생활에서 판매하는 채소들 노디가 배우미로 있었던 PaTI 생활로 돌아가 볼까 봐요. PaTI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어요? 저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신 하자센터와 공간민들레에서 활동하면서 미대 입시를 준비했는데요. 공간민들레에서 만난 친구가 마침 PaTI 예비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그때 PaTI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배곳 설명을 들었을 때 ‘꿈의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대 입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호주에 잠시 다녀왔을 정도로 기존 미대 입시 체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 제게 시험과 평가에 대한 압박 없이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국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꼭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결국 1기로 입학했어요. 실제 배우미로 4년간 지내보니 PaTI는 어떤 곳이었나요? 사실 지금 생각하면 배곳에서의 생활에서 후회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물론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요. 배곳에 다닐 때 출석은 채웠지만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도 많았고, 무엇보다 수업 내용이 현실적으로 와닿지가 않았어요. 근데 지금은 다르죠. UX 수업을 들었을 때 이게 지금 하는 일과 이렇게 밀접하게 영향을 맺을지 몰랐는데, 채소 판매를 하면서 사람들 간의 접점을 만들고 서비스를 원활하게 하는 게 바로 UX 디자인이더라고요. 홍성에 내려와서 별별 일을 다해보면서, PaTI를 다닐 때 들었던 다양한 수업들을 통해 여러 가지를 제대로 경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하곤 해요. <입는 침낭>, 2014 PaTI에서 들은 수업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해요. 수업과 사람들이 함께 생각나네요. 먼저 재옥 같은 경우 제가 무엇을 하든 계속 응원을 보내줬던 게 지금도 무척 고마워요. 김태헌 스승도 생각나요. 한글꼴 디자인 수업을 했을 때 각자가 만든 글자를 보면서 성격 분석을 해준 적이 있어요. 글자에 대한 평을 했지만 실제 사람들의 성격을 꿰뚫어보는 느낌에 놀랐죠. 한 가지를 집요하게 판 사람들이 갖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던 신기하고 경이로운 순간이었어요. 박기수 스승의 사진 수업에서 느낀 여러 경험들은 지금까지 잔상으로 남아 영감을 주고 있어요. 특히 안그라픽스 3층 공간에서 진행한 여러 수업 때 느낀 공간적 경험들은 지금도 즐거운 감정으로 기억되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노디 입장에서 PaTI에 다니는 배우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스스로를 특정하게 규정할 때가 많았어요. ‘나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야’, ‘나는 이런 거에 약하니까 그냥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겠어’라고 생각하곤 했었죠. 근데 채소생활을 시작하면서 사람이 마음먹으면 못하는 게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됐어요. 하하. 그래서 예전에 관심 두지 않았던 수업을 제대로 들어두었으면 지금 도움이 참 많이 됐을 거란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래서 비록 당장 관심이 가지 않더라도 최대한 다양한 수업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이 나중에 다 쓸모가 된다는 걸 잊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홍성 생활은 어때요?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나 스트레칭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한 후 농장에 출근해서 일하고 점심에 스튜디오에서 오후 업무를 해요. 스튜디오에서는 사람들이 집에서 채소를 기를 수 있는 작물 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수업 준비도 하고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홍성에서도 홍동면인데요. 이곳은 교육에 특성화된 지역이에요. 농촌에서 채소를 손수 기르면서 알게 된 살아있는 지식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곳에 있는 ‘햇살배움네트워크’라는 기관과 상의해서 지역 내 초중고 학생들과 채소를 소재 삼아 수업을 진행했었죠. 지금은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과 기존 수업을 계속하고, 풀무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농업 실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아이들을 직접 가르친다니 놀라운데요.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나요? 농부 선생님이 해외 자료를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게 프랑스의 ‘미각 교육’이랑 미국의 ‘에더블 스쿨야드’이었어요. 에더블 스쿨야드는 오가닉 요리사 1세대인 앨리스 워터가 마틴 루서 킹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부탁을 받아 농업과 음식을 소재로 모든 수업의 커리큘럼을 짠 경우인데요. 인도를 설명할 때나 적정기술을 설명할 때나 농업과 음식을 통해 수업을 진행해요. 신기하죠? 이런 자료를 보니까 저도 이렇게 해보고 싶은 생각이 모락모락 들어서 공개된 자료를 참고해 수업을 따라해 봤는데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전문가들이 정교하게 짠 수업이지만 제가 진행할 땐 무언가 어설프고 핵심이 빠져있는 느낌이었어요. 막연하게 에더블 스쿨야드를 따라 하기 전에 가르치는 주체인 제가 어떤 사람이고 왜 이런 수업을 하고 싶은지 인지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저는 교육 전문가가 아니니 스스로 어떻게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어떤 걸 알려줄 수 있는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채소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높여서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채소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봤죠. 예를 들어 이런 거예요. 자연을 쏘다니며 액자 틀로 마음에 드는 풍경을 채집하고, 채소를 손질해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어보고, 채소 이야기를 다룬 책을 함께 읽으면서 채소에 눈, 코, 입을 붙인다던가 하는 거죠. 이를 통해 채소에 대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함양하고 더 나아가 수업 시간에 느낀 채소, 들, 바람, 분위기 등의 경험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답니다. 노디의 수업 풍경 지금 노디에게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일이 성공의 경험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거요. 저희 세대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특수 목적고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치고, 대학에 들어가려고 재수, 삼수를 하는 게 일상이었죠. 이렇게 실패에 익숙해진 환경에서 지내다가 홍성에 내려와서 ‘넌 할 수 있어’, ‘너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같은 말을 농부 선생님께 자주 들으니 제 자신감이 높아졌어요. 채소생활을 통해 제가 원하는 걸 충분히 이루는 경험을 하고, 더불어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성취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혹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현재 채소생활은 자체적으로 채소를 기르고 판매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추후 작물홈키트, 채소가공식품도 선보이고 싶어요. 채소생활이란 이름에는 채소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우리 일상 속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바람이 들어있거든요. 그게 채소 화장품, 채소 옷, 채소 집이 될 수도 있고요. 단순히 먹는 대상에 국한되지 않고 채소를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상상하는 방향으로 활동을 확장하고 싶어요. 저희 농장에서 실습하는 풀무농업고등학교 친구들 중에는 대학에 가지 않고 지역에 남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함께 프로젝트도 하고 싶어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와는 작물과 관련된 동화책을 만들고,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와는 채소 요리 레시피를 개발해보는 거죠. 종국에는 취미에 머무르지 않고 상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리고 싶은 욕심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노디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주세요. 하고 싶은 이야기요? 음...농업에 종사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농업에 대한 지식도 적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즉 농업이 별 인기가 없는 거죠. 근데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이미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거든요. 저만해도 시간이 갈수록 먹는 게 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겪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다른 농가를 자주 모니터링하는데, 농업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경우를 자주 봤어요. 농업에 대한 오해를 부르는 정보들은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하는데 이럴 때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람들에게 대놓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으니까요. 가끔 타지역 선생님과 아이들이 농촌 실습 때문에 방문해서 일하다가 농업의 노고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이 선생님과 학생 간에 오갔다는 걸 전해 들으면 깜짝 놀라요. 농업에 대한 이런 선입견을 벗기는 데 디자인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죠. 사실 지금 우리나라 농가를 보면 일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갈아 넣는 경우가 아직도 빈번해요. 반면 외국에서는 농부의 건강을 지키면서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장비와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거든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많이 속상해요.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통해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농업을 영위하면서 점차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이해당사자 간의 가치가 좀 더 증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마친배우미 소식지 보기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2020.10.30.쇠날 글: 전종현 | 멋지음·빛박이: 박하얀 | 빛박이 제공: Studio H, 이윤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