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전시는 국현미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의 일환으로 이중섭 특별전이야. 사실 예약에 성공을 못해서 상설 전시만 예약하고 갔는데 다행히도 현장 티켓이 있어서 현장에서 예약하고 관람하고 왔어. 친구들도 온라인 예약에 실패하면 낙담하지 말고 현장 티켓을 노려봐!
이번 특별전은 이중섭 선생님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어. 인생 전반의 마사코에게 쓴 엽서들과 작은 연필화들은 물론이고, 인생 후반기의 전성기의 작품들, 은지화를 만나볼 수 있었어. 한국인들은 상징하는 소를 많이 그려서 민중화가로도 불리기도 하는 그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떠한 민중적인 성격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면들을 더 보게 되었어.
극한의 F 성향인 내게 전시를 보면서 크게 2번 울컥하는 구간이 있었어. 은지화(은박지에 선이 도드라지게 작업하는 방식)를 전시해둔 공간에서 본 작은 글이 마음을 두드렸어.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자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대포집 목로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종이,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이나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구상.
이 글을 읽는데 참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작품을 놓은 적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그는 살려고 살기 위해서 계속해서 그렸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림은 이중섭을 살게 해준 매개체가 아닐까? 일제강점기에 힘든 시기를 지나면서도 그가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렇게나마 해소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얼마나 예술에 절박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하더라구.
후반기의 그의 작품들을 보면 가족들이 자주 등장해. 밝은 색채와 발랄한 아이들이 등장해 따뜻한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씁쓸함이 가득 묻어났어. 안타깝게도 이중섭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야 했기 때문에 밝은 가족화에서도 그의 그리움이 가득 느껴졌어. 그래서 따수움이 한가득 느껴지는 마음 한 켠이 쓰라려서 울컥울컥 했어. 그러다 이중섭의 생애를 담은 일대표를 보는데 1954년 그는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날 희망을 품고 전시 제작에 몰두해 2년 뒤 1956년 41살의 나이에 그는 9월 6일 무연고자로 사망해. 이 글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그 어느 누구보다 아내를, 아이들을 사랑한 그가 무연고자로 사망하기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드디어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작품을 몰두했다는 것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지금의 그는 명성과 명예를 얻었지만 그런게 지금 와서야 그런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 생각마저 들었어.
이중섭의 전반적인 생애를 느낄 수 있는 이 전시는 내년 4월 23일까지 하는 장기 전시니까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도 꼭 한번 관람하고 오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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