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임대인 김대성 한 명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는 1669명(경찰 추산)에 달한다. 이철빈 위원장은 그 중에 한 명이다.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초기엔 혼자 끙끙 앓으며 보냈다는 그는 벌써 1년이 넘게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며 낮엔 직장인, 저녁엔 활동가로서 1인 2역을 하고 있다. 이철빈 위원장은 지난해 LAB2050이 주최한 '전세사기 긴급토론회', '부채 공론장 - 급증한 한국 청년 빚, 도와야 할 것과 돕지 말아야 할 것?'에 토론자로 참여한 인연도 있었다. 그와의 랩터뷰를 위해 전화통화를 한 날짜는 1월 11일(목) 저녁이었다.
- 윤형중 : 수요랩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본인 문제부터 물어볼게요. 김대성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지난해 10월 정부가 상속관리인 선임을 지원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부 언론엔 '김대성 피해자 구제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런가요?
= 이철빈 :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습니다. 김대성 피해자들은 임대인이 사망하면서 주택 소유권이 붕 떠있고, 소송이나 경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작년 봄에 허그(HUG,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보증보험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상속관리인을 선임했었는데요. 지난해 10월 보증보험 미가입자 대상으로도 상속관리인 선임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나온 것이고, 저도 신청했습니다. 10월과 11월엔 서류 제출하는 신청 기간이었고, 12월엔 담당 법무사가 법원에 신청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법원이 상속관리인 선임을 결정해줘야 하는데요. 구정 연휴 전까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상속관리인이 선임되도 그때부터 소송이나 경매가 시작되는 것이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구제 받는다'는 표현은 너무 비약이 심하죠.
사실 이 정책 말고 우리가 따로 제안한 정책이 있습니다. 허그가 채권자로서 상속 자산 전체에 대한 파산 신청을 할 수가 있습니다. 기업을 파산처리하듯, 상속 자산을 파산 처리하면 그에 얽힌 채권자와 임차인들이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고, 그게 상속관리인 선임보다 빠르다고 허그에 여러차례 제안했으나, 전례가 없다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 김대성 피해자들은 그저 계속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 윤 : 경공매 중지도 전세사기 피해자 분들이 먼저 대안을 제시하셨는데, 이것도 그런 사례군요. 저는 철빈님을 지난 4월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성영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이 철빈님을 인터뷰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었고요. 그 이후 여러 유형의 피해자들과 함께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과 개정 운동, 전세사기와 역전세 예방을 위한 구조적 대안까지 제시하며 활동한 것들을 지켜봤습니다. 자신의 피해를 넘어서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 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 이 : 일종의 직관이 있었습니다. 전세사기란 사건에서 각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치중하기 보단, 서로 조금씩 다른 피해 유형이라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구조적이면서 제도적으로 풀어나갈 때 개인의 문제도 더 잘 해결될 수 있다는 직관 말이죠. 그래서 피해자들 사이에서 '우리 뭉쳐서 대응하자'는 공감대가 있고, 1년 넘게 활동을 이어올 수 있던 것 같아요. 또, 저 개인적으론 제게 주어진 일이라고 직감했는데요. 저는 대학 다닐 때부터 한국의 부동산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관련된 시민단체인 희년함께에서 활동하며 지금 다니는 회사로 연결돼 직장도 얻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선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했었는데, 그 경험이 지금 맞딱드린 문제를 대응하는데에 도움이 됩니다.
- 윤 : 지난해 말 얼룩소에 올린 글은 잘 봤습니다. 특별법 개정이 왜 필요한지가 잘 정리돼 있더군요. 철빈님을 비롯해 그동안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는데요. 관련 논의가 국회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다가 지난 연말에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만 통과한 상태입니다. 물론 아직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란 절차가 남아있고요.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요?
[얼룩소]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금 당장, 특별법 개정을 외치는 이유/이철빈
= 이 : 개정안에 피해자들의 요구였던 '선구제 후보상', 신탁주택에 대한 대책, 주택 시설관리에 대한 내용이 담겨 다행입니다. 물론 이 개정안도 아쉬워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지난해 초 아무 대책도 없었을 때를 떠올리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정부와 여당의 미온적이고도 비협조적인 자세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에 대해 보여온 자세를 볼 때, 국민의힘 의원(김도읍)이 위원장인 법사위가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야당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법사위의 심사 촉구라든지, 총선전 본회의 통과를 계속 요구할 계획입니다. 오늘도 총선 전에 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왔습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대통령 거부권인데요. 총선 이후에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총선 이전이라면 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봅니다.
- 윤 : 당면한 전세사기 문제 뿐 아니라, 전세제도 전반의 문제제기와 대안도 제시한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에 기고한 글을 잘 봤습니다. 저는 전세금융과 보증보험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 정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철빈님의 대안들이 하나하나가 아주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네요.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 전세사기 피해자가 제안하는 전세사기 예방대책
= 이 : 우리가 당한 피해도 억울한데, 그 피해가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흘러만 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이미 벌어진 전세사기는 그것대로 잘 수습하되, 추후에 전세사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 대책들을 잘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기고한 내용 이외에도 제안할 내용들이 수십가지입니다. 우리 피해자들은 이 문제를 겪으면서 모두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부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정부와 여당은 우리를 전혀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정책들을 보면 헛발질도 많고요.
- 윤 : 저는 지난 연말에 최지수님의 <전세지옥>을 읽었는데요. 이미 철빈님과 지수님이 북콘서트를 함께 진행했더라고요. 그 책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또 북콘서트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궁금하네요.
= 이 : 전세사기를 주제로 한 글이었지만, 제 나이 또래가 겪었을 법한 사회문제가 많이 녹아 있었습니다. 기업의 직장 문화에 문제 있고, 지방의 회사 기숙사는 바퀴벌레랑 동거하는 수준이었으며 혼자 살 집을 알아봤더니 근저당이 안 걸린 집은 없는 상태였죠. 그걸 보면서 한국 사회를 사는 청년들이 어릴 때부터 직장과 집을 구하는 사회인이 되기까지 제대로 된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책 내용 중에 먹고 싶은 라면을 먹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져 저렴한 라면을 사서 먹었더니 정말 맛이 없었다거나. 닭날개와 맥주 한 캔을 차마 구입하지 못했던 일화 등도 기억에 남네요. 북토크에선 패널들이 각자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꼽는 코너가 있었는데요. 제가 꼽았던 구절은 "죽지 말고, 우리 살아서 이 문제를 헤쳐나가자"였어요. 실제로 피해자 대책위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인데, <전세지옥>에서도 나와 인상깊게 느껴졌어요.
이철빈님과의 랩터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 대책위와 LAB2050이 함께 진행할 만한 모종의 공동 기획을 논의했다. 그 얘기는 하나의 주제로 정리해 다음에 다시 소개하겠다. 끝으로 이철빈 위원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을 공유한다. 랩터뷰 끝.
[한겨레] 한동훈 비대위원장님,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나주세요/이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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