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드디어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2021년 새해가 펼쳐질 것만 같네요.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사건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일상이 멈췄는데요. 부디 내년에는 상황이 나아지길 기원합니다. 이번 여덟 번째 ‘마친배우미’ 소식은 봉식(노성일)입니다. 출판사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소장각’을 운영하고 있지요. 봉식은 얼마 전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답니다. 지난 3년 간의 노력과 연구를 집대성한 『크메르 문자 기행』인데요. 캄보디아에서 쓰는 크메르 문자의 특징과 그 역사에 대해 탐구한 작업입니다. 더배곳 졸업 작업으로 시작했는데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캄보디아 현지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수준 높은 책을 만들었어요. 북 디자이너와 출판사 발행인 역할을 겸임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주변부’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봉식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봉식. 안그라픽스를 지나갈 때 인사를 나눴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지난 1월이네요. 시간이 쏜살처럼 흘렀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안그라픽스 출판부에서 나온 후 코로나19가 터졌어요. 3달 정도는 집에 계속 머물렀죠. 3년 동안 지난하게 끌어오던 ‘크메르 문자 기행’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출간하려고 퇴사한 만큼 그 3개월 동안 자료 조사를 더 하고, 이전에 썼던 글을 브런치에 다시 올리면서 다듬었어요. 그리고 지난 10월 말  『크메르 문자 기행』 이란 이름으로 책이 정식 출간됐지요. 제가 1인 출판사를 세워 독립 출판을 한터라 발행인으로서 처리해야 할 일을 배우고 처리하며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중입니다.
출판사 대표라니 멋지네요. 현재 운영하는 출판사 ‘소장각’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출판사 겸 디자인 스튜디오 소장각은 ‘작은 책들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한자로 작을 소, 책 장, 집 각을 써서 小章閣입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만두고 파티 더배곳에 입학을 했어요. 더배곳 시절에도 북 디자인 외주를 했고요. 졸업 후에는 안그라픽스 출판부에서 1년 반 정도 있었죠. 결국 사회에 나와 출판사라는 직장에서 5년 정도 일하고, 프리랜서 기간까지 합치면 한 7~8년 정도 북 디자인을 한 것 같아요. 그동안 출판업계 내부자의 시선으로 시장의 변화와 책이라는 물건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지되는지 계속 지켜봐왔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책이 정보를 읽는 매체보다, 소장하고 소유하는 굿즈의 성격이 강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로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은 책을 직접 만들기로 했어요. 일단 소장을 해야 콘텐츠를 보니까요.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책을 만드는 곳으로 소장각을 시작했습니다. 

‘작은 책들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소장각의 로고
출판사 이름에서 요즘 자주 쓰이는 ‘소장각이다’ 할 때의 그 의미가 연상되기도 해요.
예상하신 대로 이중적인 이름입니다. 소장각은 갖고 싶은 것을 뜻하는 요새 유행어죠. 근데 지금은 괜찮지만 곧 시간이 흐르고 이런 유희적 용어가 더 이상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으면 바로 시대 뒤안길로 퇴색할 것 같은 걱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선시대 궁에 있던 규장각에서 영감을 얻어서 소장각에 한자 이름과 의미를 부여했어요. 개인적으로 소박하고 단출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원래 규장각이 갖는 그 두터운 존재감을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작은 책들의 집’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어요. 게다가 ‘閣’이라는 한자를 쓰니 한옥 전경이 연상되더라고요. 나중에 서울 외곽에서 햇볕 잘 드는 작은 ‘ㄷ’자 한옥 한켠에 소장각이 자리 잡은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해집니다.(웃음)
소장각에서 출간한 책 1호가 봉식의 『크메르 문자 기행』인데요. 동명의 더배곳 졸업 작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더배곳에서는 한 권의 책을 온전히 만들어 졸업 심사를 보는데요. 저는 크메르 문자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정보를 정리해 제출했어요. 근데 졸업 작업으로 끝내기에는 계속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2017년 12월 말 졸업 전시를 하고, 이듬해 1월에 캄보디아로 떠났어요. 졸업 작업의 깊이와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크메르 문자 전문가 40여 명을 만나 인터뷰하고, 크메르 문자에 담긴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한 살아있는 이야기를 체득하는 기회를 가졌죠. 그 후 수집한 정보를 정리한 후 졸업 작업을 보완해서 정식 출간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 찾아간 곳이 안그라픽스였죠. 기획서를 보여드리니 보완하면 좋겠다는 답과 함께 안그라픽스 출판부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하면 어떻겠냐는 역제안을 받았답니다. 

그렇게 다시 직장 생활을 하며 출간 준비를 하려고 계획했지만 실제 일을 하면서 개인 작업까지 진행할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더라고요. 1년 반 동안 마음 속 짐으로 남아 있었기에 더 늦기 전에 책을 마무리하고, 완성본을 대중 앞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정식 출간을 위해 안그라픽스에 다시 기획서를 제출하거나, 다른 출판사를 찾아보는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요. 당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제가 흥미를 느끼는 콘텐츠에 눈이 갔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사회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마이너한 측면이 강하거든요. 이런 콘텐츠를 제대로 소개하는 출판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출판사 겸 디자인 스튜디오인 소장각을 창업해 자체 출판을 시도하게 되었죠.

『크메르 문자 기행』, 2020 (사진: 김주영)
봉식이 좋아하는 콘텐츠는 어떤 건가요?
단순히 아이템의 문제를 떠나 제가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 의식과 관련되어 있어요. 단어로 표현하면 ‘주변성’ 혹은 ‘변방’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중심으로,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고 느껴요. 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주변에 더 눈길을 주게 되죠. 재미있고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는 중심이 아닌 바깥에도 풍부하게 있다고 믿거든요. 디자이너로서 요즘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인도 및 동남아시아의 시각 문화에요.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 지역이 가난해서 배울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 취할 이득도 변변치 않아서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있냐고 말해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배울 게 너무 많은 곳이거든요. 지역의 풍토와 전통, 사람들의 삶의 태도, 문화가 아주 풍부하게 살아있어요. 경제적인 관점으로 중심부와 주변부를 나누는 행위가 저에게는 의아해요.
그래서 캄보디아에서 사용하는 크메르 문자에 관심을 갖게 됐나봐요.
사실 옛날부터 특별한 관심을 둔 건 아니에요. PaTI를 다니다 휴학하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던 중 동남아시아를 갔다가 그 지역에 매력을 느꼈죠. 제가 처음 해외로 나간 게 20대 중반이었어요. 인도를 갔는데 인상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았어요. 뚜렷한 원색, 강한 햇빛,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한 풍경이 혼재된 상태에 존재하는 인도인의 종교성은 당시 서울이란 도시에 살던 제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경험이었죠. 그런데 동남아시아 지역에 가보니 예전에 인도에서 접한 느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알고 보니 동남아시아가 인도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영향을 받았더라고요.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던 중에 졸업 작업을 준비하면서 주제가 잘 잡히지 않자 머리를 식힐 겸 여름에 캄보디아에 가게 되었죠. 평소 앙코르와트를 꼭 가보고 싶었거든요.

캄보디아 ‘바콩’ 유적 앞에서, 2017
앙코르와트에 가보니 어떻던가요?
앙코르와트를 비롯해서 옛 앙코르 제국의 문화가 남아있는 여러 유적지를 탐사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터벅터벅 길을 걷다 우연히 유적 기둥을 짚었어요. 손에 오돌토돌하게 만져지는 것이 있어서 살펴보니 깜짝 놀랐죠. 동글동글한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거든요. 마치 과거의 융성한 문화가 소환되는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보고 듣지도 못한 이 유적지의 글자가 현재 캄보디아에서 쓰는 문자와 비슷해 보이는데,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캄보디아 문자가 품고 있는 신비한 역사는 무엇인지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마치 판타지 소설 속 이야기 같네요. 혹시 다른 경험도 있을까요?
킬링필드라고 아실지 모르겠네요. 크메르루주 정권이 저지른 대규모 학살 사건인데요. 그 현장에 방문해서 가이드 설명을 들어보니 기가 찼어요. 크메르루주의 모토가 농민들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였는데요. 그걸 위해 학교 선생님,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지식인을 모조리 죽이면서 당시 전 인구의 ⅓이 몰살당했어요. 사람만 없앤 게 아니에요. 지식을 보관하는 도구들도 광기의 대상이 됐어요. 타자기, 책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하던 사원의 스님들까지 죽이거나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어요. 한 마디로 문자를 통해 전수하는 지식 문화가 완전히 끊기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게 겨우 40여 년 전인 1975년에 일어났어요. 앙코르 제국의 유적지에서 장대한 문화적 저력을 느낀 후 바로 킬링 필드에서 인간의 잔혹함과 문명의 파괴를 목격하니 캄보디아의 문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졸업 작업의 주제로 삼을 만큼 크메르 문자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강했나 봐요.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의 문자 간의 동질성을 연구하다 보니 캄보디아의 크메르 문자가 다른 나라 문자의 기원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태국, 라오스 문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거든요. 캄보디아의 선조인 앙코르 제국이 동남아시아 내륙 지역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후 각 민족의 언어에 따라 문자가 발전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역사를 문자를 통해 재해석하는 가능성을 보았어요. 그래서 크메르 문자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크메르 문자 수집 과정
졸업 작업에서 다룬 주제를 보완해 정식으로 출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실제 둘 간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졸업 작업을 할 땐 전시일까지 단 3달밖에 남지 않아서 두성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집중했어요. 크메르 문자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도판을 만들면서 한 권의 책 작업으로 완성했죠. 하지만 계속 부족함을 느꼈어요. 크메르 문자에 대한 여러 상황을 하나로 꿸 수 있는 흐름을 잡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캄보디아 현지의 전문가들을 만나며 그 흐름을 찾으려고 했고 계속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유의미한 깨달음을 얻었죠. 그래서 책도 발간하게 되었고요.
봉식이 발견한 깨달음이 무엇일까요?
크메르 문자는 사람을 닮았다는 사실이에요. 형태적으로는 글자 하나가 머리, 몸통, 발로 이루어져 있고 33개의 자음은 사람 신체 부위를 시각적으로 함축한 결과물이죠.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방식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서로 엮이면서 소통하는 광경을 연상케 해요. 그리고 크메르 문자가 겪은 역사가 마치 인간이 평생 겪는 인생과 유사하다는 점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중년의 위기를 겪고, 노쇠해지는 상황이 크메르 문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고대 인도의 영향을 받아 문자가 탄생하고, 앙코르 제국 때 문자가 번성하며 다른 나라의 문자에 직접적인 뿌리가 되었고, 그 이후 제국주의 시절에도 지켜왔던 문자가 크메르루주를 겪으며 기반이 붕괴되고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거든요. 
그러면 결국 사람이 종래에 죽는 것처럼 크메르 문자도 소멸하는 걸까요?
저는 책 말미에 크메르 문자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고 표현했어요. 현재 크메르 문자는 그 글자 수가 너무 많아서 모바일 환경에서 단점이 많아요. 실제 캄보디아인이 채팅을 할 때는 빠른 소통을 위해 문자 메시지보다 음성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게 일반적이에요. 만약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관계라면 크메르 문자 대신 그 언어의 문자를 활용할 정도죠. 맞춤법 통일이나 문자 개혁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나중에 정말 크메르 문자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노출돼있죠. 하지만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현지의 젊은 세대들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개발자들은 크메르 문자를 더 쉽게 입력하는 키보드 시스템을 만들고, 서체 디자이너는 유니코드 시스템에 맞게 개편하거나, 시안성과 독해력을 높이기 위해 형태적인 실험을 하고 있죠. 이런 작금의 상황을 현지에서 그대로 마주하면서 크메르 문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크메르 문자의 흥망성쇠를 다룬 봉식의 책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문학을 다루는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고, 한때는 종교인이 되고 싶은 생각도 했었죠.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지금, 크메르 문자에 대한 책을 내고 나니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의 영역으로 옮겨졌다고 느껴요. 그래서 『크메르 문자 기행』을 출간하고 나니 크메르 문자와 캄보디아 사람들이 절친한 사이처럼 느껴져요. 그들이 잘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문자가 사람들을 연결하고 이해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는 걸 몸소 체득한 것 같아요.

<미얀마 데이즈>, 2020,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전시 14 - 만질 수 없는’
이제 PaTI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PaTI 더배곳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어요?
PaTI에 입학하기 전에 작은 출판사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작업을 이끌어줄 사수도 없고,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회사라서 사실상 디자인에 대해 저만 만족하면 되는 곳이었죠. 그러다 보니 디자인을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마치 낮은 천장에 머리가 닿아서 너무나도 불편한 것처럼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고 북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이런 고민이 생기니까 이제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 관련 대학원을 조사하다 PaTI를 알게 됐는데 배곳 이름에 ‘타이포그라피’라는 단어가 적혀 있어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답니다. 특히 타이포그라피를 바탕으로 자신의 배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더배곳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답니다.
PaTI에서의 배움을 요약해 줄 수 있나요? 어떤 경험, 수업, 씬이 기억에 남나요? 
PaTI에서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요. 다시 입학하고 싶을 정도랄까요. (웃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날개와 함께 했던 ‘훈민정음’이었어요. 한글의 창제 원리에 사람과 하늘, 땅이 조화를 이루는 철학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 문자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흥미롭게 바라 보는 눈이 뜨인 것 같아요. 그 흥미가 크메르 문자로 이어진 것이겠죠? 다른 수업으로는 스승과 배우미가 함께 여행하며 배우는 ‘길 위의 멋짓’이 있어요. 저는 중국의 쓰촨성과 대만을 다녀왔는데요. 친구들과 함께 아시아의 시각 문화를 경험한 일이 뜻깊었어요.

‘길 위의 멋짓’ 중 ‘중국 쓰촨 기행’, 2018

<봉식의 두성 생존기>, 2017 (편집: 박예나)
두 달간 더배곳 공간인 ‘두성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봉식의 모습을 친구 박예나가 취재, 편집한 기록물이다.

졸업 작업 때문인지 몰라도 PaTI는 봉식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 것 같아요. 봉식에게 PaTI는 어떤 곳으로 기억될까요? 
제가 PaTI에서 보낸 시간은 딱 2년인데요. 가끔 4~5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만큼 시간을 압축해 몰입한 시기였다는 뜻이겠지요. 그때만큼 온몸의 감각을 모두 열어놓고 지냈던 시간이 있었을까 싶어요. 나에게 온전히 집중했던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PaTI를 졸업한 지 3년이 다 돼가요. 지금 다니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각자가 좋아하는 것에서 나다움을 찾는 시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최근 봉식의 관심을 끄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북디자이너로서, 그리고 출판인으로서 말이죠.
디자이너로서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눈길이 많이 가요. 저는 글자가 여백을 만나 생성하는 규칙적인 균형에 매료되곤 했는데, 요즘은 이미지를 이용해 틀을 벗어나는 작업이 좋더라고요.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저만의 작업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지고요. 여러 사람들의 작업을 주의 깊게 보는 건 물론이고, 운영과 마케팅 측면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조금씩 익히고 있습니다. 낯선 영역의 일을 다루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네요!

『바우하우스』 (안그라픽스, 2019) 북디자인 작업

‘일제강점기 새로 읽기’ 시리즈 북디자인 작업, 가갸날, 2018-2019

북스인터내셔널 달력을 위한 그래픽 시리즈, 2019
봉식은 끈기 있게 자신의 취향을 따라가는 스타일 같아요. 향후 10년 동안 해보고 싶은 게 있을까요?
가깝게는 캄보디아를 넘어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의 시각 문화를 더 소개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좋거든요. 조금 더 멀리 본다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인도 문자 전문가가 되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그런 미래를 그릴 때면 정말 신나요. 
코로나19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게 힘들지만, 2021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는 『크메르 문자 기행』 책의 판권을 수출하는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하고 싶은데요. 세계 시장에서 흥미로워할 주제라 개인적으로 기대해봅니다. 2021년을 맞이해 출간하고 싶은 책도 몇 권 있어요. 그중 가장 큰 프로젝트는 미얀마의 달력을 연구해서 책으로 엮는 거랍니다. 미얀마에서는 8요일을 세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해요. 인도에서 기원한 천문학에 바탕을 둔 역법이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해주세요!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 얼른 동남아시아로 떠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모두 코로나19 조심하시고, 돌아오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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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2020.12.24.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멋지음·빛박이: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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