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세계몰락감> 뉴스레터 10호  
"고어 소설과 인간"
안녕. 이렇게 또 편지를 쓰게 되었네.
저번에 우리 인사했었는데, 나 윤비야.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네.
지금은 나 혼자 방에 틀어박혀있어.
현재나 제이를 만난지도 좀 된 것 같아.
아무래도 조금 사정이 있었거든.

내가 학교를 가든말든, 방에서 나오든 말든,
밥을 챙겨 먹든 말든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어떨 땐 그게 편하기도 한데,
한없이 외롭고 괴로울 때도 있어.

그럴 때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
특히 피폐하고 잔인한 고어 소설을 좋아해.

모두가 나한테 취향이 특이하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어두운 내용 속에 빠지면
오히려 내 어둠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아.

한번은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런 소설을
자꾸만 찾게 될까 궁금해서 기사를 찾아봤는데,
그 내용이 은근 흥미롭더라고.
심리학자 리 챔버스(Dr. Lee Chambers)가 말하길
우리가 고어물을 본다는 것은,
스스로 제약이 가능한 안전한 환경에서
실제로 겪기 힘든 "무언가"를 소비하고
우리의 감정적 반응의 한계 를 시험해볼 수 있는 경험이라는 거야.

그래서 공포물과 고어물은 어떻게 보면
아주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고 할 수 있대.
둘 다 보통 '악'을 소재로 하고 있고,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만큼 경이롭기도 한 거지.

그래서 고어물이나 공포물을 볼 때
우리는 아드레날린, 엔돌핀, 도파민 이 배출된대.
우리가 아주 기쁜 일을 경험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난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해.
고어물은 또 보통 매우 비현실적이라서,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어.
어쩔 땐 그 고어함에 무뎌지다 못해
코미디보다도 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대.

내가 애독자로서 얘기해줄 수 있는 건…
꽤나 맞는 얘기 같아.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야.

나한테만큼은 힘든 삶에서부터의 회피이자
코믹한 해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노래는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야.

현재랑 제이한테 들려줬을 때
처음에는 갸우뚱하다가 점점 좋아졌다더라고.

걔네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겠지?
딱히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니고,
말이 나와서 말이야.

나는 이렇게 혼자 책 읽고, 혼자 음악 들으면서
자꾸만 찾아오는 이 밤을 지낼 수 있으니까.

그럼 안녕.

2024년 10월 12일
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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