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9월의 마지막 주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더위가 가시고 시원해진 날씨가 참으로 반갑습니다. 새벽에는 꽤 차가운 온도로 내려가니 환절기 건강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마친배우미’ 소식 열여섯 번째 주인공은 홀리(윤지원)입니다. 홀리는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에요. 사진 스튜디오와 향기 브랜드, 회사 두 곳을 동시에 다니면서 커머셜 사진을 찍는 프리랜스 포토그래퍼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개인 사진 작업과 향을 만드는 일을 한답니다. 회사에서 습득한 업계에 대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자기 회사를 차려 여러 가지 일을 하길 고대하는 예비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홀리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홀리 안녕하세요. 처음 만나 반갑습니다! 홀리라는 예명이 참 독특한데요. 혹시 설명해줄 수 있나요?
홀리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보통 ‘성스럽다holy’란 의미를 생각해요. 근데 사실 그 ‘홀리’와는 연관이 없고요. 휴일을 뜻하는 ‘홀리데이holiday’에서 따온 말이랍니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사람이 이름 따라 산다는 속설을 고려해서 홀리데이의 홀리를 이름으로 삼으면 하루하루가 휴일처럼 자유롭고 기분 좋은 날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인도의 축제가 있어요. 홀리 페스티벌이라고 오만가지 색깔 파우더를 던지며 노는 축제인데요. 제 작업에 컬러가 다채롭게 쓰이기도 하고 평소에 옷차림이나 그런 것도 색감을 중시해서 비주얼적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확장하기도 해요. 홀리 페스티벌도 똑같이 ‘holi’를 쓰거든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날개가 제 예명을 듣고 ‘홀리-홀린다-사람을 홀린다’라며 작업으로 사람을 홀려보라 말한 게 떠오르네요. (웃음)
하하. 홀리의 작업은 이름처럼 사람을 홀리고 있나요?
그러고 싶은 게 희망이죠. 저는 다수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소수의 사람에게 열렬히 사랑받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홀리에 대해서 특별 조사를 시작해볼게요. 지금 하는 일이 무척이나 다양하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회사도 두 곳을 다니고 개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가장 메인으로 꼽는 첫 번째 직장은 아날로그 기반의 사진 스튜디오에요. 여기는 PaTI에서의 수업으로 인연이 되어 2018년 2월에 들어가 지금까지 다니고 있어요.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곳이라 여기에서 제가 하는 업무에도 아날로그적인 일이 포함돼있어요. 현상이나 밀착을 하는 암실 작업도 하고, 디지털화를 했을 때 리터칭도 하고요. 디자인이 필요할 땐 디자인 업무도 맡죠. 사진작가 선생님이 순수 사진을 지향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작품 구매 의뢰가 들어올 땐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도 해요. 두 번째 직장은 룸스프레이를 주로 제작하는 향기 브랜드에요. 일주일에 2-3번 정도 출근하는데 저는 여기서 제품 제작과 판매를 맡고 있어요. 제품의 향을 만드는 조향 작업은 대표님이 하시고 그 이외에 실제 상품화하는 일과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걸 돕는답니다. 선주문 후제작 시스템으로 운영하는지라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상품으로 만들어서 발송하고, 전달하는 곳이랍니다. 세 번째 직장은 이제 회사가 아니라 프리랜서 일이죠.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어요. 제품, 인물, 행사 스케치, 전시 사진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이미지로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룹니다. 이건 순수 작업이 아니라 모두 커머셜 작업으로 클라이언트와 함께 진행합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가끔 개인 작업과 조향을 해요. 향수와 캔들 등을 만들곤 한답니다.
다시 한번 놀랍네요. 다시고 있는 회사 두 곳의 특징에 관해 물어볼게요. 사진 스튜디오는 지금 3년 반 정도 꾸준히 다니고 있는데요. 어떤 일이 제일 재밌나요?
암실 작업을 할 때가 가장 흥미로워요.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보정하는 건 제가 늘 하는 일이잖아요. 여기는 아날로그 필름으로 사진을 찍은 후 실제 암실에서 인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경험이 늘 특별하게 다가와요. 잘 아시겠지만,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혹은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로 찰칵찰칵하면 이미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사실 이미지 한 컷 귀한 걸 잘 느끼지 못하는데, 스튜디오에 출근해 암실에서 인화 작업을 하면 이 한 장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시간, 정신적인 집중이 필요한지 상기할 수 있어서 잊고 있던 사장 한 장의 중요성을 깨닫곤 해요.
그럼 향기 브랜드 일은 어떨까요? 향을 만드는 곳이다 보니 뭔가 비밀스러운 느낌이 나는데.
향기 브랜드는 오프라인 쇼룸과 작업실을 한 공간에 같이 쓰고 있어요. 공간 하나를 둘로 나눈 건데 밖에서는 내부의 작업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간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공간 전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죠. 오직 내부 사람들만 전체 돌아가는 상황만 안달까요. 하하. 그래서 비밀스러운 공간이 맞긴 해요. 여기는 올해 3월부터 다녔으니 이제 6개월 채웠네요.

COSMIC FUGUE : The Dialogues
‘수토메 아포테케리’ 팝업 전시, 헤화동 어쩌다 산책, 2021
들으면서 계속 신기한 게 주중 낮에 두 곳의 회사를 다닌다는 점이에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사진 스튜디오는 주4일 근무를 하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스튜디오다 보니까 사진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배우러 오는 편인데, 대표님이 그런 개인 활동을 굉장히 장려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개인 촬영 일정이 있으면 근무 날을 바꿔주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향기 브랜드에서 회사 일을 도와줄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거예요. 실제 일할 수 있는 날이 일주일 중 토요일 하루였는데, 인터뷰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일단 지원을 했죠. 조향을 하는 대표님이 인문학적 기반으로 콘셉추얼한 작업을 하는 터라 평소에 어떤 곳인지 늘 궁금했죠. 운이 좋게도 최종 면접까지 갔는데 전화가 왔어요. “일손이 급해서 다른 분을 먼저 뽑았는데 홀리씨와도 잘 맞는 거 같아서 함께 일하고 싶어요. 근데 토요일 하루만 가능한데 괜찮나요?” 저는 운명인가 싶어서 일을 시작했죠. 그리고 향기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튜디오 근무 일수를 조정해서 이제 사진 스튜디오는 일주일에 3번, 향기 브랜드에는 2~3일 정도 출근하고 있습니다. 양쪽 대표님도 다들 알고 있어서, 굉장히 정정당당한 투잡러랍니다.
향기 브랜드에서는 조향하는 법도 배우는 중인가요?
향을 만들려면 매우 많은 재료가 필요한데요. 그 재료를 제가 개인적으로 다 갖추지 못하니까, 회사에서 귀한 재료를 접하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새로 나오는 향을 가장 먼저 맡고 반응을 공유하고, 이렇게 섞으면 이런 분위기가 난다는 정도는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어요. 근데 사실 저는 여기에 조향을 배우려고 취직한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두 곳 모두 전문적인 창의성을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최적의 환경 같은데, 사진 촬영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조향을 배우는 것도 아니면 회사에서 어떤 걸 얻을 수 있나요?
사실 제 꿈은 지금 다니는 사진 스튜디오의 제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향기 브랜드 대표님께 조향법을 전수받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업계에서 자리를 잡은 두 곳의 스타일에 물들까 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답니다.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저는 저만의 스타일을 지키고 싶어요. 즉 제가 원하는 건 창업에 가까워요. 제 이름을 걸고 커머셜 사진 작업과 향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 그래서 회사 생활은 크리에이티브와 거리가 멀지만, 대신 이 업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생태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의 제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제가 나중에 독립적으로 활동할 때 겪어야만 하는 여러 일을 실제 필드의 전문적인 곳에서 미리 보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홀리가 원하는 창업은 어떤 건가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준비했었어요. 아이템은 향초였는데요. 제가 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학창 시절부터였지만 실제 조향을 배운 건 2019년이었죠. 제가 사진을 찍다 보니까 이미지 한 장만으로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주면서 승부를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조향을 배우면서 향기와 사진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사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박제하는 것에 가깝죠. 근데 향도 비슷하거든요. 사람의 오감 중 가장 발달하지 못한 게 후각이래요. 그래서 옛 기억을 떠올리는 데 후각이 자주 쓰이는데, 이런 옛 경험과 지나간 시간이라는 키워드가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과 향을 함께 다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확장하게 된 거죠. 향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간단하고 쉽게 즐기는 건 향초에요. 심지에 불만 붙이면 향기가 모락모락 나니까요. 그리고 저는 빛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빛을 내는 물체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조명이요. 향초를 아날로그 조명으로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한 점도 있답니다.

PaTI 졸업작업 〈아홉개의 고리〉, 2018 
향초를 만들 때는 특정한 콘셉트를 가지고 진행했나요?
그때는 완전히 제 취향으로만 구성했어요. 하나의 큰 브랜드 스토리보다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웠죠. 저는 우디와 허브를 좋아해요. 자연에서 오는 깊은 향을 맡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온몸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만족스러워요. 플로럴 계열도 좋아하는데, 특히 재스민과 일랑일랑 등 농염하고 짙은 향이 제 취향이죠. 이런 조합이 어떤 느낌이냐면 태국 같은 휴양지에 가서 마사지 받을 때나 리조트에서 쉴 때 나는 이국적인 분위기에요. 우디향에 플로럴 계열을 섞어서 총 7개 정도의 향초를 준비했었죠.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쇼핑몰을 열지 못했군요.
코로나 때문에 쇼핑몰을 열다가 멈춘 건 아니었고요. 사진 스튜디오와 프리랜스 포토그래퍼 일이 코로나 사태 때문에 영향을 받게 되니까 거기에 대처하느라 신경을 모두 쏟다 보니 향초 쇼핑몰을 오픈할 겨를이 없었어요. 금방 사라질 줄 알았던 코로나가 지금까지 지속되니까 시간이 꽤 오래 흘러버렸네요. 그때는 본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벅찼던 시기였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소소하게 판매했어요. 그래서 그때 지은 이름들은 비밀로 하고 있어요. 나중에 제가 다시 사용할 예정이라서요. 하하.
이런 다양한 관심사와 열정이 만나면 홀리의 사진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사진의 색채감에 영향을 주지 않나 싶어요. 제 사진은 흑백이나 단조로운 톤에서 느끼지 못하는 화려한 감이 있어요. 인도의 홀리 축제를 연상시키는 색감의 향연입니다. 또 저는 레이어를 겹치며 사진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원본과 비교해보면 가끔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오기도 해요. 저는 처음부터 사진 한 장 찍은 걸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업의 재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진과 겹치거나, 그 위에 채색을 하기도 하죠. 작업에 대한 영감도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받는데요. 예를 들어, 이태원에 디제잉을 즐기러 가면, 청각적인 자극이 시각으로 이전하는 공감각적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이런 영감으로 사진을 찍으면 확실히 다른 때랑은 다양한 사진이 다채로운 느낌으로 나오죠. 향도 마찬가지예요. 조향의 결과물을 테스트하면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머리에 펼쳐지는 느낌이 밀려와요. 예를 들어, 소나무도 향이 따로 있는데요. 그 향을 맡으면 되게 얇으면서도 시원한 바닷가가 연상돼요. 물결에 반사되는 날카로운 이미지들이 반짝거리는 풍광을 느끼는 거죠. 향이 얇다는 표현이 낯설겠지만, 향도 둔탁한 향, 날카로운 향, 뾰족한 향,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향 등 여러 가지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답니다.

〈Self Portrait〉, 2021 
홀리에 대해 더 알려면 PaTI 생활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홀리는 PaTI를 어떻게 알게 됐나요?
처음 알게 된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대학교 4학년 올라갈 때 즈음 아닐까 하는데 2014, 2015년 정도의 일인 것 같네요. 대학 다닐 때 다른 친구들과 관심사가 많이 달랐어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는 일반 기업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서 기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보다 작은 스튜디오에 관심에 생겨서 취업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듯싶어요. 그러다 4학년 여름방학 때 ‘디자인 캠프’ 1기에 참여했는데, 그때의 멘토 교수님이 PaTI를 다니던 배우미들과 연결해주시면서 직접적으로 알게 됐죠.
PaTI에 들어와 보니 독특한 점이 있던가요? PaTI 생활의 소회가 궁금해요.
일단 자유로를 타고 통학한다는 점에서 매일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가는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서 일찍 끝나면 휴게소에서 소떡소떡도 사 먹는? 다른 배우미들과도 공감한 사실인데, PaTI는 다른 차원의 공간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서로 가진 고민의 결이 좋아서 작업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서로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많이 주고받았어요. 무작정 비난하는 게 아니라 별로면 왜 별로인지, 좋으면 왜 좋은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편하고 좋았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렇게 의견 나누기가 쉽지 않잖아요. 특히 수업에서 얻는 것보다 동료 배우미와의 관계에서 얻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스승도 자주 만났지만, 그 스승들은 다른 학교에서도 만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이 소중한 친구들은 PaTI라는 공간에서만 모일 수 있으니까요.
홀리가 제일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은 무엇인가요?
지금 일하는 곳과 연관 있는 ‘방과 후 사진 수업’이요. 수요일 저녁 시간에 진행되었는데 온종일 수업을 듣고 나면 피곤할 법도 하지만 즐겁게 들었어요. 방학 때는 다 같이 남해로 촬영 기행을 떠났죠. 새벽부터 일어나 눈도 떠지지 않는 채로 카메라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탔어요. 하산 후 먹었던 음식과 막걸리...그날의 온도가 아직도 기억에 새록새록 해요.

PaTI 사진 수업(스승: 김도균), 2016
홀리의 졸업 작업이 궁금해요.
약 10년간 써온 일기와 메모에서 발췌한 문장을 이미지로 번역한 작업이에요. 개인의 서사에만 집중한 터라 이 작업에서 꺼낼 수 있는 유의미한 메시지는 제게만 통해요. 보는 분들에겐 매력적인 이미지로만 다가가도 좋다고 생각했죠. 기억의 시차에 관한 작업인데, 그 시차의 차이를 물성으로 표현하면서 분류했었죠. 그런데 제가 이미지를 설명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불친절한 작업이 되어버렸어요. 포트폴리오를 올린 사이트에 가도 아무런 텍스트가 없어요. 일부러 읽히게 놔두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미지로만 봤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PaTI 졸업작업 〈아홉개의 고리〉, 2018
PaTI에서의 경험이 홀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삶을 조금 더 여유롭게 관망할 수 있게 되었어요. 파주라는 도시의 특수성인지 모르겠지만, PaTI에 있으면 다른 삶과는 단절된 느낌이 들어 아무런 방해 없이 나만의 정원을 꾸며나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앞으로 일구어야 하는 밭의 크기도 넓은 게 보여요. 30살이 넘으면 의욕이 꺾이는 친구들이 많은데, 오히려 저는 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뭔가를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져요. PaTI의 친구와 스승으로부터 내 삶의 주도권을 잡고 독립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걸 많이 배웠죠. 확실한 건 입학 전보다 나은 저 자신이 되었고, 스스로 현재가 만족스럽습니다.
지금 PaTI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해요
작업에도 때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학교에 다닐 때만 할 수 있는 작업이 있거든요. 되든 안 되든 이것저것 많이 해보면 좋겠어요. 졸업이라는 목표 지점이 잘 보이지 않아서 출구 없는 통로처럼 갑갑할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이리저리 오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졸업에 성공하길 바라요. 그러면서 많이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직장에 다니게 되면 잘 놀지 못해요. 학생일 때가 시간이 제일 많죠.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아는 선에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학연이라는 건 정말 좋은 거더라고요. 꼭 이용하세요.

매거진 《탁 tac!: 집과 고양이》 창간호 사진 작업, 2021
PaTI에서 만난 동료 포도(김경진)의 제안으로 함께 한 작업이다 
지금 매우 바쁘게 살고 있는데 혹시 현재 스케줄을 조정할 생각이 있나요?
독립 준비는 계속하고 있어요. 사실 이 말만 몇 년째 하는 것 같네요. 막상 퇴사하고 혼자 하려다 보니까 부족한 게 엄청 많더라고요. 자본도, 실력도요. 아직 쌓아야 할 게 많으니 아주 이른 시일 내에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준비하고 있어요. 서울에 공간을 얻어서 스튜디오와 브랜드 쇼룸을 운영하고 싶어요. 기획하고 있는 회사도 있는데 스튜디오 공간을 얻으면 동료들과 함께 진행하려고 해요. 그전까지는 지금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없을 듯싶어요.
사진을 찍거나 조향을 할 때 아이디어가 막히면 난관을 뚫는 홀리만의 노하우가 궁금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제가 쌓은 인풋이 소진되었다는 의미죠. 예전에는 그게 단순히 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체력도 포함된다고 봐요. 그래서 일단 일이 밀렸어도 도무지 진전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일단 잠을 자요. 그리고 나서도 생각이 안 나면 또 자고요. 주로 꿈을 꾸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라 깨어있을 때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해요. 꿈속에서 고민하는 저는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갈 때가 많아서 도움을 얻는 경우도 많아요.
홀리는 ‘직업’에 대한 욕심이 강한가요, ‘작업’에 대한 욕심이 강한가요?
굳이 따지자면 직업 같아요. 작업을 꾸준히 잘하다 보면 저절로 따라오는 게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은 이미 일상의 한 축이 되었기에 이를 수익과 연결해 작업 세계의 확장을 추구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타이틀이 필요하죠. 상업성과 연결되는, 제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무언가요. 그것에 힘을 가할 수 있는 결과물도 물론 필요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제가 어떤 사람인지 주구장창 설명해야 하는데, 바쁜 현대인은 이걸 다 들을 여유가 없어요. 또한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직업을 지켜야 해요. 제가 챙길 것 없이 혼자 세상을 산다면 작업만 하는 게 꿈 같은 삶이죠. 하지만 제게는 돌봐야 할 고양이 3마리가 있고, 이것저것 경험하길 좋아하는 ‘제’가 있어요.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은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죠.

무소속 신지예 후보의 서울시장 출마 마지막 연설 장면 촬영, 2021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는 게 꿈인가요? 1년은 너무 짧으니까 2-3년 뒤의 모습, 5년 뒤의 모습 그리고 10년 뒤의 모습으로 나눠 생각해볼게요.
향과 사진에서 추구하는 건 편안함이에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쉼이나 치유의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하는 일들은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게 아니죠. 집에 사진 한 장 없고, 좋은 향기가 나지 않아도 집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진과 향이 더해진다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죠. 사람들의 삶에 조미료 역할을 하고 싶어요. 2-3년 뒤에는 공간을 얻어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네요. 대부분 회사로 운영하지만, 어떨 때는 스튜디오로, 어느 날은 가게로, 이것저것 용도변경이 잘 되는 그런 공간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사진 찍으러 놀러 오세요! 5년 후에는 월급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직원들을 채용해 일하고 싶어요. 아마 업무는 같겠지만 초창기 멤버들로만 일을 하기에는 벅차서 다른 직원들이 생기는 상황 말이죠. 일이 많이 들어와서 돈 많이 주는 친절하고 자애로운 사장님이 되고 싶어요. 10년 후에는 뜬금없지만, 요가 선생님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예전부터 언젠가 요가를 할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인생에서 쉼과 편안함을 최고로 여겨서 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데요. 요가만큼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빠르게 줄 수 있는 운동도 없거든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요가 선생님이 탐나네요. 요가 배우러 오세요!
자.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못다 한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세요!
여러분 건강이 최고랍니다. 다들 건강 잘 지키세요!! 사진 필요하면 연락주시고요. 재미있는 프로젝트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숍에도 관심 가져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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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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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30.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성하은, 장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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