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곧 설날도 찾아오네요. 신정과 구정 사이, 1월의 마지막 주에 2022년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내봅니다. 이번 ‘마친배우미’ 소식 열아홉 번째 주인공은 모찌(김소연)입니다. 모찌는 PaTI 한배곳과 더배곳, 그리고 학위 연계 과정까지 통달한 유일무이한 사람이랍니다. 작년 12월 바젤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어요. 모찌의 오랜 학업 생활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물어봤답니다. 달변가라고 할 만큼 조리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던 모찌의 이야기에 집중해주세요. 무척 흥미로우니까요.

모찌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스위스 바젤에 있다가 작년 12월 초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PaTI와 학위 연계를 맺고 있는 바젤디자인학교에 2년 동안 있었거든요.

바젤디자인학교까지 다녀오다니 PaTI의 모든 교육과정을 겪은 유일한 경우인데요!

제가 지난 2013년 8월에 한배곳 1학년 2학기로 편입해서 한배곳 생활을 마친 후, 바로 더배곳 과정을 시작하고, 이 또한 마무리한 후에 바젤에 가서 이제야 돌아왔으니 PaTI 3단계를 모두 경험했죠. (웃음) 

한배곳을 마친 다음 더배곳을 간 사람도 모찌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더배곳에 들어간 이유가 궁금해요.

한배곳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그림이나 디자인을 잘 모른 채 막연한 호기심으로 가득했었어요. 졸업할 즈음 생각을 해보니, 3년 6개월 동안의 배움을 가지고 이후의 30년을 살아간다는 게 상상이 잘 되지 않았어요. 배움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서 더배곳을 선택하게 되었죠.

PaTI 맞이잔치(입학식), 2017
모찌는 한배곳을 졸업한 날 더배곳에 입학했다.

더배곳도 2년이고, 학위 연계 과정도 2년이잖아요. 그럼 바젤에 바로 가는 걸 선택해도 됐을 텐데요.

스위스로 바로 가면 언어 장벽이란 난관이 기다리고 있어요. 바젤디자인학교의 학부로 편입을 하기 때문에 수업은 독일어로 진행되거든요. 제가 독일어에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배곳을 끝내고 바로 바젤 행을 택하기엔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어요. 더불어 작업적인 면에서도, 바젤디자인학교로 가면 곧 졸업 프로젝트에 진입하게 되는데 제가 졸업 논문으로 무엇을 다룰지 그 주제도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고요. 그래서 어짜피 독일어도 배워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쌓아야 한다면, 더배곳을 다니면서 준비하는게 제게는 더욱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느끼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던 효율적인 방법이 되었답니다.

모찌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네요. 그럼 더배곳에 다닐 때는 어떤 면에 집중했나요? 더배곳도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스스로 공부하는 곳이잖아요. 

더배곳에서는 리서치와 아카이빙에 초점을 두었어요. 저는 시스템이나 짜인 구조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렇다고 인포그래픽에 완전 빠져있는 편은 아니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리서치와 아카이빙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리서치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자료를 찾고, 그 자료를 리서처의 관점으로 분류하고 연구해서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는 일이에요. 아카이빙은 리서치 과정에서 찾은 자료를 순차적으로 카테고리화해서 기록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일이죠.

한배곳 졸업 작업 〈민화의 색채와 원료〉, 2017
한배곳 과정에서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모찌는 더배곳의 본과정을 다닌 건가요? 듣기에는 디자인 인문 연구 과정과 비슷해 보여서요. 

본과정을 마쳤죠. 저는 리서치와 아카이빙 등의 연구 활동을 하더라도 그래픽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인 인문 연구 과정을 보면 강독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하지만 이론 중심이기 때문에 실기적인 부분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실기를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에 시각적인 작업과 연구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본과정을 선택했어요.

연구와 실기에 모두 집중한 더배곳의 졸업 작업이 어떻게 나왔는지 무척 궁금해지는 걸요.

제 연구 주제는 ‘길이 단위 시스템’이었어요. 일단 듣기만 해도 엄청 방대해 보이는 주제죠? (웃음) 돌이켜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눈에 보일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해요. 단위 시스템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굉장히 큰 우주거든요. 저는 사람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나, 사용하는 물건 등 여러 가지가 그 사람의 손 크기에 맞춰 있다고 생각했어요. 곧 각자의 손을 기준으로 한 우주를 가지고 있다고 다가왔죠. 그래서 제가 찾고 있던 단위 시스템은 사실 제가 가진 우주를 찾는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글을 먼저 쓰고, 단위를 주제로 드로잉을 100장 정도 완성했죠. 그래서 졸업 전시 때는 글과 드로잉 작업, 그리고 그동안 진행했던 리서치 작업이 전시장에 모두 모이면서 책으로도 완성이 됐어요. 글 쓰는 일이 무척이나 고단했답니다. 서문을 완성하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던 것 같아요. 저 서문 쓰고 울었잖아요. 하하. 책은 제 손 사이즈에 맞춰서 만들었는데요. 첫 번째 챕터는 ‘내가 찾은 세계의 조각’이란 제목으로 리서치 결과가 쫙 나오고, 두 번째로는 ‘내가 가진 세계’라고 해서 제가 자주 쓰는 물건을 소개했어요. 모든 물건을 실제 크기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표현했죠. 아이폰, 신용카드, 문구용 칼과 자 등을 기준으로 제 손이 익숙하게 느끼는 사이즈에 대한 평균값을 찾았어요. 그리고 ‘내가 그린 세계’라는 챕터에 지금까지 완성한 드로잉 100여 장을 포함시켰어요.

더배곳 졸업 작업 〈MZ: 손으로 감각하는 세계〉 전시 전경과 드로잉, 2018

드로잉에 대한 설명이 더 듣고 싶어요.

이미지를 보여드려야 이해가 편하실텐데…굳이 말하자면 추상화에 가까운 드로잉이에요. 누군가는 바실리 칸딘스키가 그리는 따뜻한 추상 그림이 떠오른다고 말하던데, 제가 칸딘스키와 엘 리시츠키를 좋아해서 더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일단 검게 채운 동그라미를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주변 요소를 그 사람 고유의 우주라고 상정했어요. 그리고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흥미롭게 탐구하면서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려고 했죠. 드로잉은 흑백 버전과 컬러 버전으로 구성되는데요. 처음에는 연필로만 드로잉을 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마스킹 테이프, 스티커 등을 사용하며 물성을 확대했어요. 더배곳 졸업 이후에도 드로잉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 지금은 아크릴 물감, 트레이싱지, 포스터의 일부, 영수증 등 그 매체가 더욱 다양해졌죠.

지금도 드로잉 작업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희열감을 느꼈어요. 저는 드로잉과 별 인연이 없고, 리서치와 아카이브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이게 일종의 ‘규정지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드로잉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 즐거운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계속 꾸준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하는 드로잉은 예전 드로잉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단위와는 큰 관계가 없어요. 제가 좋아서 자유롭게 하는 일종의 취미가 되었답니다. 동그라미로 가득찼던 초기 드로잉과는 다르게 이제는 세모도 나오고, 건물 형태도 나오고, 곡선도 많아지고 있어요.

제6회 타이포잔치 ‘사물과 타이포그래피의 여러 이야기’ 모서리 섹션 참여, 2019

더배곳을 끝낸 후 다녀온 바젤디자인학교에서는 어떤 작업을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규찬과 아용 등 바젤디자인학교를 졸업한 마친 배우미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모찌의 경우에는 어땠을까요?

졸업 논문 주제로 다소 심오한 걸 고르는 바람에 사서 고생을 한 게 좀 있었죠. 주제는 ‘특정 시각요소에 대한 선호’였어요. 제목은 한국어로 ‘안전가옥’이라 짓고, 영문으로는 ‘Mental Sanctuary’라고 명명했죠. 안전가옥은 보통 신변의 위협을 피해서 숨거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을 뜻하는데요. 저는 이 안전가옥을 제 심신이 편안하고 제가 좋아하는 걸로 가득찬 공간으로 정의를 했어요. 사실 제가 혼자 자취를 하게 된 게 스위스 바젤이 처음이었거든요. 그동안 쭉 한국어가 통하는 우리나라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는데, 언어가 낯설고 기후도 다른 문화권에서 난생 처음 홀로서기를 하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스위스 같은 경우, 주말에는 상점과 여러 장소들이 아예 문을 닫거나, 일찍 셔터를 내리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더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저 자신에게 더 집중하게 됐어요. 외로움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약간 두려움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익숙한 걸 찾아 헤매는 데 시간을 좀 더 쓰게 됐죠. 그러면서 안전가옥이란 단어에 끌렸던 것 같아요. 제 마음과 몸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고, 제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저만의 안식처요.

그럼 안전가옥을 작업으로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실제 공간을 만들었나요? 

아니요. 제 안전가옥은 가상의 존재에요. 사실 공간이 아니라 행위에 가깝죠. 안전가옥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사진을 찍었거든요. 특히 건축물 사진이요.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는데, 주말에는 지역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질 않으니까 결국 담기는 피사체가 주로 건축물이 되었어요. 나중에 시간을 같이 보낼 친구들이 생겼을 때는 아름다운 건물을 보러 가서 그 광경을 담아왔어요. ‘왜 건물을 찍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 취향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건물의 접면에 보이는 날카로운 직선과 파사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선에 매력을 느끼거든요. 스위스에 한국보다 직선 건물이 많았던 건 아니었고, 제가 그런 직선을 찾아헤맸어요.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런 접면의 직선이 살아있는 사진들을 서로 모아서 결합시켰답니다. 건물 사진의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다른 건물의 모습으로 구성돼있는 거죠. 제가 스위스에서 발견하고 만든 안전가옥을 모아서 이게 정말 안전한지 확인하는 연구도 했어요.

어떻게요?

건물을 꼴라주한 결과는 모서리 접면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구성되는데요. 이 양쪽 이미지가 지니는 각 요소와 이미지의 순서를 염두에 두고 베리에이션을 시도해봤어요. 아주 얇은 트레이싱지 위에 사진을 오려 붙인 후 왼쪽과 오른쪽 트레이싱지 중 어느 쪽을 위에 올리는 지에 따라서 전체 이미지의 강약을 조절해봤죠. 그리고 건물 두쪽을 통합한 이미지의 각도를 재봤어요. 특히 두 면이 만나는 꼭지점의 통합적인 각도에 집중해서요. 그 뾰족한 부분이 제가 매력을 느끼는 결정적인 요소였거든요. 그렇게 분석을 해보니까 일정한 각도의 범위가 포착되었어요. 결과적으로 42도에서 98도, 120도에서 141도까지의 각도를 취하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바젤디자인학교 졸업 작업 『Mental Sanctuary: Analysis on Visual parameters』 
(안전가옥: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시각 요소에 대한 분석) 과정들, 2021

안전가옥에 대한 시각적인 연구를 이렇게 끌어낼 수 있네요. (웃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실험을 해봤어요. 건축물을 다시 해체해서 다른 조형을 만들어냈을 때 어디까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요. 여러 각도로 건축물을 재조합한 결과를 바라보니 어떤 건 괜찮았지만, 별다른 구석이 없어보이는 어떤 조형은 당장이라도 자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거슬리고 불편했어요. 그런 조형의 공통점은 묘하게 어긋나거나 서로 간에 작은 틈이 존재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건물을 좋아하는 게 혹시 건물 자체가 아니라 건물들이 서로 결합해 만들어내는 통합적인 형태에 영향을 받는 게 아닐까 궁금증이 일더라고요. 이를 위해 건물 한 쪽을 사진 대신 전체 윤곽선을 따서 도형화시켰어요. 그리고 0%, 50%, 80%, 100% 총 네 단계로 검은색 농도를 설정해 제가 얼마나 예민하게 느끼는지 다시 확인해봤답니다. 어쩌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연구의 결과는 색이 진할 수록 편하긴 하지만 건물이 가진 3차원적 요소를 배재한 결합은 제게 매력을 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이 상태로 바젤디자인학교 졸업 논문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었어요. 앞으로는 남이 찍은 사진으로 건물을 조합하거나, 제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조합을 마음에 들게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해요.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했네요. 바젤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됐는데, 지금 파주에서 일을 한다면서요?

지금 일하는 곳은 ‘아트앤퍼퓸’이라는 작은 향수회사에요. 돌아온지 얼마 안 된지라 한국의 디자인 필드 상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 감각도 유지해야할 필요성을 느껴서 들어가게 됐어요. 여기는 주4일 근무에 오후 5시 칼퇴근이랍니다. 칼퇴근이라 워라밸을 유지할 수 있고, 회사에 나가지 않는 금, 토, 일요일에는 개인 작업과 운동, 휴식을 적절히 병행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지금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디자이너의 역할이죠. 올해 새로 런칭한 라인의 브랜딩과 기존의 제품 패키지를 리뉴얼하는 일을 맡고 있고요. 텀블벅에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때 필요한 굿즈를 디자인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들어간지 1달도 안 된지라 앞으로 어떤 일이 쏟아질 지 몰라서 약간 긴장을 타고 있답니다.

바젤디자인학교 1학기 Authorship class (그래픽으로 자기 소개하기) 작업 일부, 2019

이제 PaTI 얘기를 해볼까요? PaTI를 들어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원래 다른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이었죠. 그냥저냥 대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이 끝나고 겨울방학이 되고서는, 이제 졸업하면 정말 모든 게 결정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대학교 4학년이 너무 크게 다가왔었나 봐요. 그래서 무작정 휴학계를 냈어요. 일단 저지르고 본 거죠. 하하. 그러고 나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나는 뭘 좋아하지?’ 고민해보니 그림을 끄적거리는 것도 좋아하고, 글자로 뭘 만드는 것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러면 그걸 배워보자!’ 하고 찾다 보니 PaTI를 알게 되었어요. 교육이념이나 방향성이 너무나도 혁신적이었죠. 뭔가를 손으로 만드는 것도 멋진데 시험도 없다니! 마치 신세계처럼 느껴졌어요. 입학 전형이 끝났을 테니 다음 연도를 준비해볼까 하면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보고 자소서도 써봤는데 그러던 중에 편입 모집이 떴어요. 근데 제가 발견했을 시점이 모집 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때였죠. 마감이 이틀 정도 남았을 거예요. 그래서 추천서도 받을 곳이 없어서 다니던 대학교 교수님께 부탁드려서 대구까지 내려갔다 오며 부랴부랴 준비해서 막판에 지원했고, 그렇게 결국 PaTI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PaTI에 실제 들어와 보니 느낌이 어땠나요? 기존에 다니던 학교와는 차이점을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스스로 모든 것에 열려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라는 걸 PaTI에 들어와서 깨달았어요. 그래서 적응도 쉽고 빠르게 후루룩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꽤 걸렸죠. 수업을 듣는 방식, 출석 체크를 하는 방식, 회의하는 것…하나하나가 새롭고 어렵기도 했고요. 하지만 구성 인원이 적으니까 의사 결정을 내리고 실천에 옮기는 데까지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점, 자유롭고 열린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은 정말 신기했어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고, 저도 같이 참여하고 있지만 그래도 신기한 느낌 있죠? PaTI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저에게 너무 짜릿하고 신기했지만, 기존 제도권에서 모든 걸 배워온 제겐 동시에 모든 게 어색했던 것 같아요. 경험이 체화되어 소화를 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랐어요. 먹어본 맛인데 만들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한배곳과 더배곳을 막론하고, 기억에 남는 수업이나 스승이 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학교에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재미있는 수업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 중 고르자면, 처음 PaTI에 들어가면서 시작한 김건태 스승의 ‘내 공간 멋짓기’와 오진경 스승이 이끌어준 더배곳의 졸업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이 남아요. 고르고 보니 PaTI에서의 긴 여정의 첫 시작과 마지막이네요. 내 공간 멋짓기는 제 공간을 직접 만든다는 게 새로운 시작에 대한 매니페스토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공구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가 없는 상태라서 시작할 땐 백지장 같았지만, 제가 쓸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 버려진 가구를 찾고 이걸로 새로운 책상을 만든다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정한 업사이클링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땀을 흘리면서 뭔가를 만들었을 때의 뿌듯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그때 좀 알게 됐죠. 더배곳 졸업 프로젝트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서문을 쓰는 데만 6개월이 걸렸는데요. 고생도 고생이었지만, 이제 진짜 PaTI를 떠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과정이나 결과물보다도 그때 마음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5년 반이나 보냈으니 정말 헤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묘하더라고요.

작업하면서 머리가 복잡할 때 끄적이다 만든 캐릭터 '두두'

PaTI에서 5년 반이란 시간을 보낸 모찌는 PaTI의 성장을 온몸으로 겪은 산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PaTI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이제는 사실 어떤 부분이 장단점이라고 콕 짚어내기엔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PaTI는 계속 변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 기준에서 얘기하는 장단점이 이제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네요. (웃음) 하지만 여전히 장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점이 생각나요. 우선 PaTI의 네트워크요. 저 때도 강의하러 오시는 분들이 참 좋았지만, 졸업 후에도 PaTI를 방문하는 분들을 보면 ‘내가 지금 PaTI 배우미면 좋겠다’ 싶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또한 PaTI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타 다른 대학에 비하면 인원이 소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정 수준의 교육의 질과 개인의 작업 공간이 보장된다는 게 특히 강점이라고 봐요.

모찌의 인생에서 PaTI의 지분은 꽤 커 보여요. 모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작업적으로는 계획을 좀 더 세우게 되었고, 인간적으로는 좀 더 유연해졌다고 느껴요. 실제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역산을 하고 각 작업 단계별 시간보다 하루 이틀 여유분을 두고 작업하며 생각하지 못한 변수에 대처할 시간을 버는 등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죠. 인간적으로는 워크숍을 해주러 오시는 여러 국내외 외부 스승과 세미나에 오시는 국내외 연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보는 시야를 간접적으로 넓힐 수 있었어요. 저는 경험의 폭이 곧 이해의 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일정 부분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넓힌 수용의 폭과 디테일한 작업 계획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결국은 조금 더 안정적인 인간이 되지 않았나 싶답니다.

지금 PaTI를 다니는 배우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청해도 될까요?

저는 졸업할 때 즈음 되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머리가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요. 하하. 쉬는 시간과 작업 시간의 구분이 없었고, 밤낮도 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간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연습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더불어 일단 재미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재미있어야 잘하게 되고, 잘해야 재밌고, 그럼 또 계속해서 고민하고 시도하게 되니까요. 일단 재미있는 걸 하세요! 어차피 그런 작업은 지금 안 하면 아쉽고 자꾸 미련이 남아서 언젠가 하게 되거든요. 그럴 바엔 주변에 의견을 나눌 사람이 있고, 피드백을 받을 스승이 있을 때 한다면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요?

대학교에서 3년, PaTI 한배곳과 더배곳에서 5년 반, 바젤에서 2년. 총 10여 년의 시간을 학업에 쏟았어요. 또래보다 사회 진출이 늦은 것에 혹시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나요?

사실 바젤에 있는 동안에는 간간히 그랬어요. 다들 직장인이라 제가 엄청 뒤처진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된다는 얘기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얘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어쨌든 선택은 제가 내린 거고 이 선택을 옳은 것으로 만드는 것도 저의 몫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주변의 시선과 속도에 맞춰서 가다간 탈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바젤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속도감일 수도 있어요. 바젤에 있을 때 주말마다 모든 상점이 닫아서 초반에 좀 답답했던 게 외려 제 속도에 맞춰서 올바르게 걷는 법을 알게 했던 것처럼요. 길고 짧은 건 대어봐야 아는 것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 그냥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수많은 오늘이 모여 미래를 만들어줄 거라고 믿고 갈 수밖에요.

모찌는 미래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나요?

제가 계획형 인간이긴 하지만 10년 후까지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면 조금 지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저는 일단 5년까지만 계획을 세웠어요. 바젤에서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5년 안에 돌아오겠다고 얘기해놓은 게 있어서 일단 5년 후에는 스위스나 유럽으로 다시 나가는 게 목표에요. 당분간 회사 일을 하면서 두들 계정에 꾸준히 그림을 그려서 올리고 싶고요. 사진도 계속해보면서 바젤의 졸업 프로젝트를 이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답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일을 좀 벌이는 한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하하. 3년 후에는 굿즈를 만들어서 입점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사업자등록증도 필요할 테니 세금 관련해서 공부도 해야겠죠? 이렇게 하다 보면 사실 3년까지의 계획은 후다닥 지나갈 것 같아요. 3년 후에는 지금 회사에 있을지, 이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스튜디오를 할 친구들을 찾을 것 같아요. 그렇게 준비해서 6년 후에는 친구들이랑 모듈식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어요.

바젤디자인학교 친구들과 함께, 2019

모찌가 마음에 품고 있는 비전이나 꿈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운 좋게 바젤에서 만난 친구들이 정말 잘 맞았어요. 게다가 그 친구들은 저와는 작업하는 게 완전 다르거든요. 어떤 친구는 사진을 하고, 어떤 친구는 정말 편집 디자인 외길이고요. 그래서 그들과 게릴라식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필요한 파트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다양한 일을 해가는 모듈식 스튜디오를 지향하며 판을 짜고 싶어요. 그 후에는 어느 정도의 자본을 모아서 예술가를 위한 레지던시처럼 갓 졸업한 친구들의 시작을 돕는 사업을 해보고 싶답니다.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다 보니 디자인이 소모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60대까지 디자이너를 하는 것도 정말 축복받은 일이겠지만, 지금 일을 대할 때의 태도나 추진력과는 확연히 다르지 않을까요. 그래서 스스로 판단했을 때 예전만 못하다 생각이 들 때 다른 계획이 없으면 막막할 것 같아요. 더불어 제가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가 되었을 때는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를 위해 환경 개선에도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너무 멀리 갔나요? (웃음) 여태까지 얘기한 단계까지 가려면 정말 많은 관문을 거쳐야 하겠지만 제가 지금 그리고 있는 비전은 이렇답니다.

장기적으로, 모찌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좀 더 줄이더라도 목표한 것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까 목표한 바를 이루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함께 나눌 사람도 없는 것이니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으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잠깐 멈출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지키면서요.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감 없이 편하게 말해주세요!

오랜 공부가 끝나서 일단 너무 행복하고 앞으로가 너무 설레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앞으로의 배움은 학교의 학생이 아니라 필드의 일원으로서 경험을 통해 쌓아갈 테니 좌충우돌 경험치를 올리는 데 매진해볼래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PaTI 내외부의 여러 스승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도 감사해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끝!

↓  인터뷰 영상  
기타 소식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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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7.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성하은, 차민경
Paju Typography Institute 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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