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언제 벌써 3월이 끝나고 4월로 향하는 지점에 도착했는지 모르겠어요. 날씨도 온화하게 풀리는 모습입니다. 가끔 쌀쌀하긴 해도 이제 정말 봄이로구나 생각이 들어요. 이번 ‘마친배우미’ 소식 스물한 번째 주인공은 해나(곽해나)입니다. 해나는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인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학부를 마치고 더배곳 6기로 입학해 2019년 졸업을 했어요. 해나가 만든 한자 글꼴 ‘홍해체’는 지금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에서 판매도 한답니다. 얼마 전까지 열화당에서 북 디자이너로 즐겁게 일했던 해나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 살펴보아요.😊 

안녕하세요. 해나!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네 해리. 저도 반가워요. 처음 뵙습니다. 하하.

해나는 더배곳 6기라고 알고 있어요. 그럼 졸업을 언제 했죠?

2019년에 더배곳을 졸업했어요.

신기하게 해나 이름이 낯익은 것 같아요.

해리에게 제 이름이 익숙한 건 혹 야위엔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야위엔이 2020년에 더배곳 졸업을 했는데, 제가 졸업 작업 감수를 조금 봐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기억하시는 걸 수도…?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야위엔이 졸전 준비할 때 지나가다 자주 봤었죠. 졸전도 물론 봤고요. 해나가 학부를 중국에서 나왔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베이징에 있는 중앙미술학원(CAFA)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와 대단하네요. CAFA면 중국 최고의 미대 아닌가요? 중국으로 유학을 간 이유가 궁금해요.

한국에서 미대 입시를 하고, 수능도 봤었는데 결과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게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재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입시미술학원 원장님 왈 ‘해나 그림 실력이면 중국 칭화대와 중앙미술학원 입시를 준비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조언을 주셨어요. 한국에서 재수하면 그림 입시 준비뿐만 아니라 1년 동안 수능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점이 큰 부담이었는데요. 중국은 가을 학기가 새 학기라서 부족한 중국어와 그림 입시만 준비하면 학교에 갈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답니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중국에 가서 6개월 동안 학원에서 거의 살았어요. 학교에 들어갈 땐 중국어가 무척 부족했는데, 수업을 들으며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죠.

CAFA 5공작실 스승, 친구들과 함께, 2013

CAFA 얘기를 더 듣고 싶은데 그러다간 오늘 인터뷰를 못 끝낼 것 같아요. 하하. 최근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얼마 전까지 열화당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고 들었어요. 

육아휴직 1년 대체 근무로 인해 열화당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작년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 일을 했어요.

열화당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나요?

단행본을 만드는 북 디자이너로 일했죠. 표지 디자인과 본문 디자인을 맡았고, 재쇄가 들어오면 재쇄 발주도 넣었고요. 열화당은 제작 전반에 걸쳐 모든 부분을 컨트롤하는 게 특징인데요. 이런 곳이 파주 출판도시에도 거의 없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열화당에서는 디자이너가 견적서와 발주서를 함께 작성해야 해요. 발주서는 용지 발주서와 제작 발주서로 나뉘는데요. 다른 출판사는 보통 제작 발주서만 작성해서 인쇄소로 넘겨요. 제작 부수, 종이 사양, 인쇄 종류를 적어서 인쇄소에 발주하면 인쇄소에서 알아서 종이 연수도 계산하며 자체적으로 책을 만드는 거죠. 근데 열화당은 용지까지 북 디자이너가 모두 계산해서 따로 발주를 넣는 거예요. 종이 발주가 들어가니 제지회사에서 저희가 원하는 종이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저희 출판사에서 종이를 구입하니까 견적서도 따로 작성하는 거죠. 결국 편집자가 다듬은 텍스트를 전달받은 후, 책과 관련한 디자인과 결과물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인쇄소 견적도 엑셀을 통해 미리 다 계산해야 한답니다. 이렇게 하면 책 단가를 책정할 때 좀 더 투명하게 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일이 복잡하고, 제작과 관련해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감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한국현대미술사』, 열화당, 증보판, 리커버, 2021
열화당 도서목록 1971-2021, 2021

프리랜스 디자이너에겐 거의 완벽한 ‘체험 삶의 현장’ 수준인데요? 

맞아요. (웃음) 원래 저도 2020년 한 해 동안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딱히 직장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제작 과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열화당을 주의 깊게 살펴본 이유도 있어요. 그러다 공고가 떠서 얼른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일할 기회를 얻게 돼서 감사했죠. 생각해보면 1년 동안 배운 게 무척 많았어요. 더불어 같이 일한 동료들이 참 좋았어요. 다 같은 또래라서 소통이 잘 되었거든요. 그래서 일할 때 마음이 잘 맞았고, 어려운 점을 공유하면서 잘 헤쳐나갔답니다.

열화당에서 내는 책의 디자인은 특징이 뚜렷한 편인데요. 일할 때 혹시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요?
저는 장점이 훨씬 더 많았어요. 제작도 제작이지만, 제가 열화당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이 완전 제 취향이었기 때문이었거든요. 한 마디로 클래식하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랄까요. 개인적으로 그런 걸 좋아하고, 열화당 북 디자인도 좋아하는 까닭에, 열화당에서의 직장 경험은 마치 제 개인 작업을 하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런 면에서 지난 1년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열화당, 리커버, 2022
산의 기억, 열화당, 2021

열화당에서 일하기 전에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는 어떤 작업을 주로 했어요?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주로 전시 콘텐츠 디자인을 많이 했어요. 대표적으로 윤동주 기념관을 꼽을 수 있겠네요. 연세대학교가 윤동주 시인의 모교예요. 그분이 머물던 기숙사(핀슨관)를 학교 측에서 기념관으로 바꾸었는데요.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분이 바로 PaTI의 건태 스승이었죠. 건태 스승이 제게 그래픽 디자인 쪽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셔서, 기꺼운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참여를 할 수 있었어요. 전체 공간에 관해 설명하는 텍스트를 비롯해 윤동주 시인의 시 제목을 붙인 각 공간마다 들어가는 콘텐츠를 디자인했죠. 건태 스승이 짠 서랍장에서 서랍을 빼면 콘텐츠가 나타나는 구조였어요. 이를 비롯해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연표도 디자인했고요. 대학 입학 전과 후의 주요 활동, 시인의 가계도와 주변 지인 관계도 등이 대표적이에요. 그리고 대학에서 소장 중인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육필 원고 등 실물 자료를 전시하는 경우, 이를 위한 캡션도 작성하고요. 총 3층으로 구성된 기념관에서 1층에 집중된 콘텐츠를 시각적으로 푸는 작업을 도맡았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윤동주 기념관 공간 사인물 및 전시 콘텐츠 디자인, 윤동주 기념관, 2020

해나를 대표하는 작업이 있다고 들었어요. 한자 글꼴인 ‘홍해체’인데요. 지금 안그라픽스 글꼴연구소에서 판매도 하고 있다면서요!

홍해체는 더배곳 졸업작업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당시 1000자를 파생해서 만들었고, 그 이후에 제가 뭘 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날개가 홍해체를 완성해서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를 통해 정식으로 판매해보는 걸 제안하셨죠. 연구소를 이끄는 모아님을 부르셔서 함께 잘해보라고 격려해주셨어요. 그러면서 홍해체 완성을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됐죠.

제가 한자 글꼴에 대해서는 무지해서요. 홍해체는 어떤 글꼴인가요?

홍해체는 중국의 스님인 홍일법사의 금강경 필사본을 모체로 만든 한자 글꼴이에요. ‘홍’일법사의 글씨를 기반으로 곽해’나가 만들어서 글꼴 이름이 홍해체 아니냐고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는데 절대 아니고요. (웃음) 한자의 서법은 크게 예서, 해서, 초서, 행서로 나뉘어요. 서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그 형태와 속도감도 변화무쌍해서 같은 글자도 다르답니다. 쉽게 별명을 붙이자면, 해서는 ‘서 있는 글자’, 행서는 ‘걸어가는 글자’, 초서는 ‘달리는 글자’라고들 해요. 필기체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게 바로 초서인 셈이죠. 그에 비해 해서는 기본으로 꾹꾹 눌러쓴 보기 좋은 서법이고요. 대표적으로 한석봉의 해서 천자문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홍해체의 ‘해’는 바로 이 해서를 뜻한답니다.

홍해체, 2018-2019

한자 서법이 참 재밌네요. 홍일법사의 글씨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길래 글꼴로 만들게 됐나요? 

일단 보기에 무척 특별했어요. 글자꼴 자체가 기존에 보던 것과는 느낌이 확 달랐죠. 보통 한자는 위엄있어 보이거나, 우아하거나 이런 느낌이 강한데요. 귀엽다는 느낌이 든 한자는 홍일법사의 글씨가 처음이었어요. 그 귀엽고 우아한 느낌에 푹 빠져서 디지털 글꼴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본으로 1000자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800자를 더해서 상용한자 1800자를 완성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완성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요. 아직 없는 글자들이 많거든요. 원래 계획은 상용한자 1800자를 만들어 버전1을 완성하고, 나중에 파생한자를 천천히 더해서 버전2, 버전3까지 진행하면서 꼼꼼히 채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홍해체를 만든 지 어언 2년이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한자 글꼴을 만든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같아요. 개인이 만든 한자 글꼴로는 국내 최초 아닐까요?

섣부르게 말하기에는 확신이 서진 않는데요. 보통 한자 글꼴은 한글 글꼴에 따라오는 부속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홍해체는 일단 디자인 콘셉트부터 정해놓은 상태였고, 상용한자로 만들기까지 디자이너 개인이 붙어서 모든 걸 총괄했거든요. 한자 글꼴은 예전에 아모레퍼시픽에서 만든 중국어 아리따체가 있어요. 하지만 이건 기업용 글꼴이죠. 개인이 만들어서 공식적으로 판매까지 한 경우로는 홍해체가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홍해체 작업 과정과 책 멋지음 일부

이제 PaTI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해나는 PaTI를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어요?

CAFA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각 교수님의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더 깊게 배우며 졸업 준비를 해요. 저는 5공작실에 들어갔는데, 그때 CAFA의 교수님과 함께 저희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분이 바로 날개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PaTI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CAFA 졸업 작업으로 〈유학생 잡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곳에 PaTI를 소개하고, PaTI에 다니는 학생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었죠. 이런 것이 모여서 PaTI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관심 정도로 머물고, 졸업 후 현지에 있는 모바일 게임 회사에 취직을 했죠. ‘익숙하지 않은 분야지만 재밌을 거야’ 하고 1년간 다녔는데 진짜 재미가 너무 없는 거예요. (웃음) 계속 편집 디자인 쪽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벼락에 맞듯 확 꽂혀버렸어요. ‘아, PaTI에 가야겠구나’ 이렇게요. 그래서 바로 날개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바로 답장이 왔어요. 마침 PaTI 학생들이 ‘길 위의 멋짓’으로 중국에 가는데 혹시 저녁 식사 때 시간이 되면 오라고 하셨어요.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여기라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요.

PaTI 더배곳을 다니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모든 게 다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언니, 오빠, 선배 이런 호칭이 없다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되게 어색했죠. 그런데 나중에는 호칭에서 오는 위계가 분명히 있다는 걸 느꼈어요. 호칭을 없앤 것뿐인데, 저보다 나이 많은 어른, 나이 어린 친구, 이런 느낌이 나지 않고 다 같이 공부하는 동료로서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편견이 많이 없어지게 되었죠.

해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해요.

‘책 멋지음’ 수업이에요. 총 두 번 있었는데요. 한 번은 오진경 스승, 나머지 한 번은 박지훈 스승이 맡았죠. 두 수업 모두 다른 의미로 제 기억에 오래 남는데요. 아무래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수업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두 번의 수업으로 제 디자인에 있어 기준점이 되는 미감을 찾고, 알아갔던 것 같아요.

오진경 스승의 책 멋지음 수업을 마치고, 2016

졸업 작업을 준비할 때 지훈 스승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제 졸업 작업 지도 스승이셨어요. 사실 지훈 스승은 홍해체라는 글꼴 자체에 대해서 피드백을 남기는 걸 조심스럽게 생각하셨어요. 아무래도 글꼴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대신 글꼴 디자이너에게 직접 연락해서 저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시는 등 세심하게 챙겨준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홍해체를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꼭 책이라는 형태로 구현해야 하는 졸업 작업의 특성상, 그 책의 꼴에 대한 피드백을 정말 많이 주셨죠. 책 구성에서도 차례부터 엄청 꼼꼼하게 체크하시고,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주셨어요. 당시 제게 부족한 점이 작업에 대한 자신감이었는데요. 제가 이 작업을 가장 오래 했고, 제일 잘 알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 그런 멘탈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며 격려해주셔서 아직도 제게는 가장 큰 스승이에요. 에세이를 지도했던 이수정 스승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졸업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이 두 분 덕분이라는 말을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답니다.

PaTI에서의 경험은 해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좋은 기억이요. 되게 거창하게 말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게 딱 저 말뿐이네요.

지금 PaTI에 다니고 있는 배우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할게요.

PaTI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누구보다 뚜렷한 어떤 것이 있어서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어떤 건 모두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무언가를 말한다는 게 조심스럽네요. 본인이 생각한 것에 대해 중심을 잃지 않고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오우리 할머니 선물가게 그래픽 디자인, 오브젝트, 2020

다시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돌아왔어요. 올해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열화당에서 퇴사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작업실을 구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운 좋게 금방 원하는 작업실을 구했답니다. 이제 월세를 걱정 없이 내는 게 올해 가장 큰 계획이에요. 그러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죠? (웃음) 지금은 운이 좋게도 열화당에서의 인연으로 몇 가지 일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마 여름까지는 책 작업을 가장 많이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북 디자인 말고도 다양하게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윤동주 기념관 작업 같은 걸 또 하면 좋겠네요.

해나는 중국 관련한 일에도 관심이 있나요? 이미 중국에서 회사도 다녔잖아요.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제 이력 덕분에 관련 일이 들어온다면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겠지만,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아요.

해나의 미래 계획이 궁금해요. 1년은 너무 짧으니까 2~3년 후, 5년 후 등으로 나눠 생각해볼까요?

사실 이런 거 정말 안 좋아해요. 하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감내해야 하는 압박감이 싫거든요. 만약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저 자신을 탓하고 좌절하는 것도 힘들고요. 이번 질문에 대해 답변을 정리해보면서 든 생각은, 저는 정말 그때그때의 선택으로 만들어져 왔다는 거예요. 뭔가 ‘이렇게 되고 싶어!’라기 보다는, 순간순간 제 앞에 나타나는 기회를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PaTI에 들어오게 된 것, 홍해체를 만들게 된 것, 열화당에 들어가게 된 것 모두 그때 당시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거였어요. 그리고 그 선택에 모두 만족하고요. 이런 게 쌓여서 제가 어떤 존재로 거듭날지 궁금하면서도, 무언가를 예상하진 않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인드라얄라: 연》 전시 포스터와 리플렛, 청주 쉐마미술관, 2021
사진가 어머니의 전시를 위해 포스터와 리플렛, 도록을 직접 멋지었다.

그럼 해나가 마음에 품고 있는 비전과 꿈을 물어보고 싶어요. 

며칠 전에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배우 윤여정을 봤는데요. 그분 말이 자기는 60세를 넘어서는 ‘사치’하며 살기로 했데요. 여기서 말하는 사치는, 좋아하는 작가와 감독의 작품을 돈과 상관없이 하는 거였어요. 이렇게 말하는 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가장 꿈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비전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좋아하는 작업을 돈에 상관없이 하는 거죠!

장기적으로 해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그게 당연한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더불어 ‘당연한 건 없어’라고 말하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말해주세요!

제 주변 친구가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오래오래 저와 함께 나이를 먹었으면 해요!

↓  인터뷰 영상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제 ‘PaTI.is(일러스트레이션)’, ‘PaPA(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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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31.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성하은, 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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