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끝이 없는 터널처럼 막막했던 코로나 상황에 드디어 변화가 생겼어요. 이젠 인원 제한도, 시간 제한도 없고, 감염병 등급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향했어요. 영화관이랑 마트에서 먹는 게 가능해지는 상황입니다. 정말 눈물 나게 특별한 4월 말이네요. 이번 ‘마친배우미’ 소식 스물두 번째 주인공은 나세(나세원)입니다. 나세는 2018년 PaTI에 입학해서 올해 더배곳을 졸업했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세는 ‘그림책 스토리텔링’ 수업에서 나온 결과물로 그림책 작가가 되었답니다. 4월 초에 『다람쥐 가방』을 발간했거든요! PaTI에서의 시간 덕분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기쁘다는 나세의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반갑습니다! 나세. 무척 오랜만에 뵈어요.

안녕하세요! 예전에 ‘파주자유음악축제’ 끝나고 달날회의에서 뵌 이후로는 통 못 뵈었네요.

아…그때가 언제죠? 정말 옛 생각이 폴폴 나네요. 2019년이었던 것 같아요.

네 맞아요. 그때 제가 제비다방 일배우미였는데, 월요일 달날회의에 참여했다가 PaTI에 처음 출근한 모습을 보았죠.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니! 근데 그 뒤로는 나세를 거의 못 봤어요.

제가 더배곳 과정이라서 줄곧 두성집에 있었거든요. 이상집에는 자주 못 갔어요.

아하. 나세는 더배곳에 언제 입학했나요?

2018년 처음으로 PaTI에 들어갔는데, 더배곳 과정은 2019년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더배곳+1’ 과정이었거든요.

더배곳 2년 과정에 한배곳 과정 1년을 합쳐서 듣는 3년 과정 말이죠?

네. 아마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더배곳+1 과정에 들어간 거 같아요. 2018년에는 PaTI 한배곳 1, 2학년 수업을 들었고, 2019년부터 더배곳 과정에 합류한 후, 졸업은 올해 했어요.

주로 어떤 분야에 집중했어요?

저는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이 있어서 PaTI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더배곳에는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편집 디자인 쪽 수업에 집중하느라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이 아예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배곳을 다니면서 한배곳에 개설된 일러스트레이션 관련 수업을 청강하며 실력을 쌓았어요.

『다람쥐 가방』 작업 과정

저는 나세를 ‘그림책 작가’라고 알고 있어서 일러스트레이션 특화 수업을 들은 줄 알았어요.

그림책 작가라고 하니 엄청 쑥스러운데요. (웃음) 저는 원래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게 운 좋게도 그림책으로 풀렸어요. 지금 PaTI에는 권민호 스승이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를 따로 진행하고 계시지만, 제가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한배곳에서 수업을 진행하셨어요. 그래서 권민호 스승의 ‘드로잉에서부터 일러스트레이션까지’를 듣고, 그 뒤에는 이수연 스승의 ‘그림책 스토리텔링’을 수강한 후, 결국 그림책까지 만들게 되었죠.

그 노력의 결과가 올해 출간한 『다람쥐 가방』이군요! 『다람쥐 가방』에 대해 소개를 부탁할게요.

『다람쥐 가방』은 자기의 그림자를 가방에 넣고 살아가는 다람쥐 이야기에요. 이야기의 배경은 어떤 빌라 A동에서 시작해요. 총 6층짜리 빌라에 동물이 입주해 살고 있는데요. 다들 가방을 메고 있어요. 가방에는 자기가 넣고 싶은 걸 가득가득 채워서 가지고 다니죠. 우리 주인공인 다람쥐는 1층에 사는데요. 책을 넣거나, 아이를 넣고 다니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다람쥐는 오직 자기 그림자만 넣고 다닌답니다. 어느 날부터 그림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해서 결국엔 가방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와버려요. 가방을 메고 있자니 그림자 때문에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고, 벗자니 자기 그림자와 떨어지면 너무 외로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1층 자기 집에서 빌라 꼭대기까지 한층한층 올라가면서 동물 친구들에게 자기 고민을 상담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 가방도 너무 무거워서 명확하게 조언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거죠. 그래서 꼭대기 층까지 갔다가 옥상에 앉아서 혼자 고민에 빠져요. ‘아, 친구들 가방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는데 이걸 다 같이 해결할 수 없을까?’ 그래서 친구들을 모아서 다 같이 가방 속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놓고 서로 정리하면서 조금은 더 가벼워진 상태로 변하게 된답니다. 마치 저희가 큰 고민이 있으면 그걸 대화를 통해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경감되고 정리할 기회로 만드는 것처럼요. 그런 열린 결말로 끝나는 그림책입니다!

『다람쥐 가방』, 킨더랜드, 2022

오.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요. 어쩌다가 가방을 멘 다람쥐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거는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데요. 요즘 아이돌 친구들이 혼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잖아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아쉬울 것 하나 없을 것 같은 친구들인데 그들이 마음속에 그렇게 힘든 짐을 가득 채우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누군가에겐 되게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죠. 그들은 성공했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니까요. 근데 심리적인 압박과 부담감은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런 게 꼭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모두 통용된다고 보고요. 제 주변에도 공황 장애,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친구들이 꽤 있거든요. 이런 마음의 짐을 계속 혼자만 안고 있으면 점점 커지는 그림자에 자신이 잠식되어 버리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다 같이 마음에 있는 그림자를 지인과 공유하며, 더 커지기 전에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다람쥐 가방』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런 훌륭한 그림책까지 만들다니 나세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어요. 이야기와 그림을 모두 혼자 진행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내게 되었어요?

그림책이 만들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수업이었어요. 이수연 스승의 ‘그림책 스토리텔링’ 수업을 들으면서 『다람쥐 가방』의 시놉시스가 탄생하게 되었거든요. 한 학기 동안 그림책의 이야기를 정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림책의 전체 흐름을 정한 후에 책 더미까지 만들어서 전시를 하는 게 목표였죠. 그때 만든 결과물이 현재 출간된 『다람쥐 가방』에 거의 모두 적용됐어요. 한 번 수정하긴 했지만, 캐릭터부터 흐름까지 크게 바뀌지는 않았어요.

그림책을 정식으로 출판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일단 상업적인 영역이라서 출판사가 붙어야 가능한 일인데요.

그때 수업이 작년 봄학기였으니까 ‘그림책 스토리텔링’ 수업의 결과물 전시를 6월에 열었을 거예요. 알고 보니 이수연 스승이 그림책 관련 출판사 분들을 초청하셨더라고요. 점심 먹고 파주출판도시를 산책할 겸 저희 전시를 들러주셨어요. 그 중 ‘킨더랜드’라는 그림책 출판사에서 제 작업을 보시고 흥미를 느끼셨나 봐요. 그래서 미팅을 하자고 권유하셨어요. 출판사와 정식으로 미팅을 하는 일이 얼떨떨했는데, 미팅을 마치고 나서 마음에 드셨는지 정식으로 출간하자고 말씀하셨어요. 굉장히 기뻤죠. 그러면서도 제가 과연 상업적으로 완성도 있는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고요. 다행히 이번 4월 초에 정식으로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림책 스토리텔링’ 수업과 전시 모습, 2021

그림책 작가로서의 데뷔를 정말 축하해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군요. 출판사와 미팅을 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작업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미션이 있었을 텐데요. 이런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어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제 이름이 걸린 물성 있는 무언가가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선보이게 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세상에서 잠깐 사라지더라도 제 그림책은 여전히 서점과 인터넷을 통해 만날 수 있잖아요. (웃음) 그게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만큼 어느 정도로 완벽하게 그림책을 완성해야 할 지 감이 안 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권유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수정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더불어 민호 스승과 수연 스승도 굉장히 많이 격려해주셨고요. 부모님이 자기 일처럼 좋아하시는 걸 보고 뿌듯하기도 했죠.

『다람쥐 가방』이 발간된 지 한 달이 채 안 됐는데요.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사실 저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서점을 못 갔어요. 원래 서점 가는 게 취미 중 하나인데, 제 이름이 박힌 책을 실제로 봤을 때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이상하게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대신 가서 사진 찍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줬는데요. 제 친구들은 “귀여워!!”라는 반응을 많이 해줬고요. 하하. 다른 분들은 ‘자기가 가방을 메고 있다면 어떤 걸 집어넣고 살아갈까’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고들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좀 더 용기를 갖고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감을 했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짐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제 책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서로서로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다람쥐 가방』을 통해 나세에게 일어난 가장 놀라운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놀라운 일은 아무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시작했던 작업이 정식으로 출간되면서 저와 인연이 전혀 없던 분들에게까지 전달되어 읽히고 사랑받을 기회를 얻었다는 거예요. 그게 아직도 제일 신기해요. 제 작업을 제가 모르는 사람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이요. 앞으로 그런 분들이 어떤 의견을 내놓으실지 무척 궁금해요. 만일 댓글이 달린다면 빠짐없이 읽을 것 같아요. 대신 첫 댓글을 보는 데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겠지만요. (웃음)

『다람쥐 가방』 그림 원화

나세는 PaTI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입학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KBS에서 방영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세상에 없던 대학〉이라는 다큐멘터리에 PaTI가 나왔었는데 그걸 부모님이 보시고 제게 알려주셨어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대학교에서는 음악을 전공했거든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리셨나 봐요. 마침 집 앞에 있는 학교라서 관심이 생겼죠. PaTI에서 소개하는 작업물과 수업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학교 철학도 마음에 들었고요. 마치 유토피아에 있는 학교 느낌이랄까요. (웃음) 이런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어떤 것을 배우는지 궁금해서 입학하게 되었어요.

상상하던 PaTI와 실제 PaTI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 텐데, 직접 겪어본 PaTI는 어떻던가요?

처음으로 들었던 권민호 스승의 드로잉 수업이 기억나요. 이런 방식의 교육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죠. 인문계 고등학교나 일반 대학에서 공부하던 제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가령 수영으로 예를 든다면, 여태 배웠던 교육 방식이 어떻게 하면 좋은 수영선수가 되는지 글로 배우고 영상을 보고 동작을 외우는 형식이었다면, PaTI에서의 수업은 물에 풍덩 빠져서 물과 친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이게 지금 공부하는 건지 노는 건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호칭도 언니, 누나 이런 위계가 사라지니까 유학을 온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PaTI의 장점은 경쟁이 없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히 지지하는 용기가 생긴다는 점이에요. 제가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요. 저는 다른 배우미들의 도움을 무척 많이 받았어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기본 편집 툴도 못 다뤘는데, 주변 배우미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격려해주고 도와줬죠. 단점을 찾는다면, 성적이나 출결 등이 자유롭다 보니까 지각하는 배우미가 많아서 가끔 수업 진행이 어려웠던 부분이 아쉬웠어요.

PaTI를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궁금해요. 

2018년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했던 학기 말 발표가 생각나요. ‘첫 돌’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려니 뭘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안집에 다 같이 모여 발표하고 배곳 스승들이 오셔서 피드백해주셨던 게 기억나요. 모두가 진심으로 서로의 작업에 대해 피드백해주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플리마켓 같은 분위기에서 본인 작업을 마음껏 소개하는 첫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갈무리하면서 돌아보게 되고, 또 어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은지 공부가 되는 시간이었죠. 동기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건 처음이라 더욱 떨렸답니다. (웃음)

그림책 작가 이수연 스승 작업실 방문 모습

나세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수업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수업이 떠올라요. 첫 번째로는 권민호 스승의 ‘드로잉에서 일러스트까지’인데요.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한 계기가 됐어요. 이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과제를 하면서도 놀면서 한다는 기분이었죠. ‘이렇게 놀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그린 그림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다른 친구의 작업을 보면서 대화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두 번째 수업은 단연 이수연 스승의 ‘그림책 스토리텔링’이에요. 수업에서 나온 결과물이 저의 첫 책인 『다람쥐 가방』이었죠! 수업을 준비하면서 정말 잠이 부족했지만 너무나도 즐겁게 작업했답니다. 매주 캐리어에 책을 한가득 가져와 보여주셨는데 그 시간도 무척 즐거웠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다른 색깔을 가지고 다른 스토리텔링 방식을 보여주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박찬신 스승과 윤웅로 스승의 더배곳 스튜디오 수업을 꼽겠어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하트 조형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업을 했는데요. 제가 잘 모르던 영역에 대해 아주 많이 배울 수 있었답니다. 작업을 시작하는 태도와 관점에 대해서도 배웠고요. 툴부터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까지 새롭게 다가와서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는 아쉬움도 들어요.

나세에게 PaTI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지 궁금해요.

졸업하니 새삼 처음 입학할 때가 떠올라요. ‘여기를 나오면 무언가 되어 있을까? 길이 보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어느 학교를 졸업하든, 어떤 직업을 가지든 인간은 항상 고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짊어지고 가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잖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PaTI를 다니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 삶과 작업에 집중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제가 재미있고 즐거운 걸 하는 게 제일 좋다는 사실을 주변 배우미와 스승을 통해서 아주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이런 삶의 태도를 배웠으니, 성공한 인생이구나. 태어나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특별히 다른 친구의 재미있는 작업을 볼 때 질투가 나거나 열등감이 생기지 않고 진심으로 그 작업을 대할 수 있는 제가 된 것이 가장 기뻐요. 사실 저 자신과 주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생각으로  PaTI에 입학한 이유도 있었거든요. 저 자신이 바로 서 있지 못하니까, 주변에 좋은 소식을 모나게 받아들이곤 하는 제가 참 작아 보였어요. 다른 스승과 배우미가 제 작업을 저보다 더 진지하게 봐주고, 이야기하고, 격려해준 덕분에 정서적으로 많이 자랄 수 있는 시간가 되었어요. 배곳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져요.

지금 PaTI를 다니는 배우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해도 될까요?

그냥 재미있는 것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건 기라성 같은 스승들이 가르쳐 줄 거랍니다. 정말로요! (웃음) 그리고 잠도 못자고 몸을 챙기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정신과 체력을 다지면서 건강하게 작업하면 좋겠어요. 지금도 머릿속에 몇몇 친구들이 떠오르는데요. 걱정이 들어요.

PaTI 졸업작업으로 선보였던 『메롱메롱』, 2021

나세는 정식으로 데뷔한 그림책 작가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그림책에 계속 집중할 계획인가요?

그림책은 정말 제게 너무 고마운 매체인 것 같아요. 우선 그림을 그리면 보관하는 게 항상 일이었는데, 그런 면에서 정말 탁월한 미디엄이에요. 특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재미있는데요. 읽는 사람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또 위로가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사실 누군가로부터 조언이나 충고를 받을 때면 가끔 의도와 다르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잖아요. 그림책도 어느 정도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독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또 한 가지 그림책의 장점은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을 수 있다는 거예요. 작업을 하다 보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내용을 주제 삼아 작업을 시작하다 보면 작업도 하고, 마인드도 다잡을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현재로서는 그림책에 계속 집중할 계획입니다.

혹시 독립적인 경제 활동에는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저는 원래 배곳을 다니기 전에도 과외를 전업으로 했었고, 배곳을 다니면서도 과외를 병행했어요. 이젠 배곳을 다니지 않으니 거의 놀면서 일하는 수준이라 오히려 요즘 경제적으로 자유롭답니다. 하하. 하지만 배곳에 입학할 결심을 했던 이유가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꿈꿨기 때문인지라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요. 계속해서 차기작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출판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꼭 그림책뿐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을 많이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에 관심이 많겠네요.

네. 엄청나게 관심이 있어요. (웃음) 제가 처음부터 그림책 작가를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라서 다양한 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전에 한 스승과 면담을 했었는데, 제가 가서 징징거리기만 했거든요. ‘제 정체성이 뭔지 모르겠는데 그게 저를 많이 힘들게 한다, 경계인인 것 같아서 어떤 작업을 하려고 해도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그분 왈 ‘그 경계에 있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이 참으로 큰 용기가 되었고,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심어주었어요. 현재로서는 그림책이 제일 재미있지만, 가능하다면 매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PaTI 졸업작업으로 선보였던 『블루 머메이드』, 2021

분명 나세에게는 앞으로 많은 기회가 다가올 거예요. 자기 삶을 설계하는 데 지침이 되는 태도나 생각이 궁금해요. 

우선, 제가 친구들과 얘기할 때 다짐하듯 하는 말이 ‘그냥 무조건 재미있는 일만 하자!’입니다.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작업을 하자고 저 자신을 많이 다잡는 것 같아요. 제가 언젠가 유경이라는 배우미에게 제 작업이 너무 어린아이 작업 같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어떤 경지에 이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라고 말해줘서 귀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었답니다. 하하하. 저 자신이 어떤 경지까지 갈 수 있는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덤덤하게 즐거운 일을 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작업자가 되는 게 소원입니다. 물론 지금도 매일 조급함을 느끼지만요. (웃음)

몇 년 후 나세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제 친구가 말하길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n년 전의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이 먹는 것이 기대된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지금보다 단단해지고 더욱더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제가 도전적이긴 한데, 멘탈이 약하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마음의 중심을 조금 다잡고, 그냥 본인을 믿으며 꿋꿋하게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돈도 많이 벌면 너무 좋고요.ㅎㅎ

앞으로 나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흔들리지 않고 재미있는 일을 묵묵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선택을 믿고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스스로 건강한 마음가짐을 갖추고 남들과 쓸데없이 비교하지 않으면서 조급해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을 테고, 어떨 때는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신뢰를 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못 한 말이 있다면 마음껏 해주세요!

마친배우미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니까 출세했다는 반응이 왔어요. 하하.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고, 과분하게 감사한 시간을 보냈네요. 사실 요즘에 조금 멘탈이 흔들렸었는데요. 인터뷰 덕분에 상황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어요. PaTI도, 저도, 앞으로 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두들 파이팅! ㅋㅋ

↓  인터뷰 영상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제 ‘PaTI.is(일러스트레이션)’, ‘PaPA(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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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28.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성하은, 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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