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폭염과 폭우가 차례대로 기다리는 날씨의 연속이네요. 다들 평안하신가요? 이번 ‘마친배우미’ 스물아홉 번째 소식의 주인공은 바로 이건하입니다. 이건하는 더배곳 진수 과정을 이수하고 지금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그래픽하를 운영하고 있어요. 매호 주제를 정해 PaTI와 관련된 콘텐츠와 외부 콘텐츠를 엮는 잡지 《Magazine Q.t》를 발행하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에 3호가 나오기도 했어요. PaTI 때문에 파주로 이사 온 후 아예 삶의 터전과 작업실까지 파주에 마련한 이건하의 이야기를 뉴스레터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이건하입니다. 더배곳 진수 과정을 마쳤고 지금 ‘그래픽하’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래픽하는 2017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대학원 다닐 때 작업을 의뢰받으려고 시작했어요. ‘그래픽’에 제 이름 끝의 ‘하’를 붙여서 그래픽하라고 가볍게 만들었는데요. 잠깐 일을 받다가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계속 방치를 해뒀어요. 그러다 PaTI 더배곳 진수 과정을 졸업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새롭게 사업자를 만드는 것보단 기존에 있던 그래픽하를 살리고 싶더라고요. 2017년 설립했지만 활발하게 작업한 건 2년 반 정도밖에 안 됐어요. 

건하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작업들을 쭉 살펴보았는데요.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소개한 매거진 《Magazine Q.t》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창간호인 1호, 그리고 2호를 거쳐 이번에 3호까지 발간했죠. 《Magazine Q.t》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PaTI를 졸업할 즈음 배곳 친구들과 재미있는 걸 해볼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하게 됐어요. 비정기 매거진이라 발행주기가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요. 원래는 분기별로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1년에 한 번 나오게 됐어요. 도서전에서도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앞으로는 발행주기를 좁혀서 1년에 두세 번 발행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려고요. 《Magazine Q.t》의 구성은 매호 포맷이 거의 비슷해요. 주제를 먼저 정하고 이에 따라 PaTI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나 작업 등을 중심으로 첫 번째 챕터에 담아요. 예를 들어, 1호의 주제는 포스터였고, 2호는 활자, 3호는 북 디자인인데요. 각 주제에 맞는 수업을 PaTI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주제를 포스터로 정하면 포스터 수업을 맡은 스승을 찾아가서 섭외하고, 그 수업을 들었던 배우미들에게도 연락한답니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스승의 개인적인 포트폴리오도 싣고요. 배우미가 수업에서 진행한 작업의 결과물과 그 이야기에 대해서도 다뤄요. 이후에는 PaTI 바깥에서 주제와 관련한 확장된 것들을 찾아다니죠. 활자가 주제였던 2호의 경우, 서체 제작 이야기만 나와서 좀 다른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싶었어요. 웹에서 이루어지는 글자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웹과 타이포그래피’를 주제 삼아 PaTI의 마친배우미와 웹 관련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는 분들을 섭외해서 담화도 하고 인터뷰도 해서 잡지에 실었어요. 이런 포맷은 3호에서도 유효해요. 

첫 번째 이슈: 포스터, 《Magazine Q.t》 #01, 2021
 번째 이슈: 활자, 《Magazine Q.t》 #02, 2022

이번 3호에 대해서 약간 더 설명 부탁해도 될까요?

3호의 주제가 북 디자인이다 보니 물성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성종이에서 나오는 종이인 알펜을 사용해서 코팅하지 않은 질감을 온전히 느끼길 바랐죠. 자세히 보시면 형압도 들어가 있고요. 어려운 기법이나 되게 특수한 건 아니지만 숨은 재미도 있습니다. 책등을 보면 참여자들의 이름이 아주 작게 적혀 있어요.

 번째 이슈:  디자인, 《Magazine Q.t》 #03, 2023  

헛. 이건 진짜 신기하네요. 인쇄할 때 묻어 나오는 잉크 흔적인 줄 알았어요.

엄청난 기술은 아니지만 책에 재미난 점을 부여하는 요소죠. 저희 잡지는 판형도 매번 달라요. 글도 중요하지만, 작업을 시원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레이아웃도 크게 크게 잡았어요. 이번 3호가 기존보다 완성도가 확 올라간 편이라 보기 좋다는 말을 들어서, 앞으로는 3호를 기준으로 삼아 잡지를 기획하려고 합니다.

더 두꺼워지고, 품도 많이 들었으면 가격도 더 올랐나요?

도서전에서 만난 분들이 하나같이 가격 설정을 왜 이렇게 했냐고 의아해하시더라고요. 남는 게 너무 없을 것 같다고요. 다들 2만원 혹은 2만 2000원 정도로 생각하셨는데, 《Magazine Q.t》 가격은 1만 5000원이거든요. 제본과 종이, 판형과 분량은 달라졌지만 아주 작은 출판사에서 소규모로 만드는 거니까 갑자기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잡지의 만듦새가 좋아지는 걸 보여주고 독자 입장에서 납득이 갈 때 인상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3호는 원래 가격대로 판매하고, 4호부터는 가격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주제와 관련된 PaTI 수업과 스승을 다루면서 외부의 이야기까지 균형 있게 확장하는 건 무척 재미있네요. 근데 늘 PaTI에서 이야기가 출발하면 독자층이 한정적이지 않을까요?

사실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이 잡지, PaTI에서 나오는 건가요?”였어요. 물론 PaTI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발행처는 PaTI가 아니라 그래픽하에요. PaTI에서 많은 도움을 주시지만, 금전적인 관계는 아니고요. 소위 말해 배곳을 등에 업고 책을 낸다는 느낌을 주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말로만 풀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방법으로 잡지의 성격을 알려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네요. 발행인의 글이라도 써야 하나 싶지만, 그럼 재미없잖아요. (웃음) 잡지의 목차 부분이 단단하지 않고 다소 불친절해서 주르륵 살펴봐야 하는 상태이기도 하고요. 소량으로 발행하는 잡지인데도 1호, 2호, 3호를 본 분이 꽤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어요. 만약 독자들이 계속 늘어나서 구독 시스템으로 바뀐다면 잡지의 성격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Magazine Q.t》를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에 출판사에서 근무했는데요. 디자이너로 일할 때와 잡지를 발행하면서 에디터 역할까지 맡아서 편집과 유통까지 신경 쓰는 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초반에는 사실 무척 미숙했어요. 창간호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죠. 2호 때부터 조금씩 다듬어 나간 것 같아요. PaTI 스승들과 배우미들, 그리고 PaTI와 관련된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이죠. 3호를 만들 때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글로 정리한다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그냥 요즘 작업 잘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집처럼 될 수도 있겠구나, 경각심이 들기도 했어요. 

서울국제도서전 참가 테이블. 왼쪽부터 1호, 2호 3호.

건하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진중한 느낌의 작업이 많던데요. 의외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함께 한 화려한 작업도 있더라고요. 더보이즈와 NCT요. 작업 스펙트럼이 넓어서 놀랐어요.

엔터테인먼트 회사 작업을 하게 된 건 아주 오래전이에요. 어떤 아이돌의 미니 앨범 커버에 실리는 레터링 작업이 시작이었죠. 언어는 한문인데, 독일의 블랙 레터 형태로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무겁고 단단한 느낌이면서 실험적이어야 하고 클라이언트의 니즈에도 맞춰야 해서 추상적이고 까다로웠지만 의외로 저와 결이 잘 맞았어요. 그 뒤로 계속 인연이 이어졌고요. 여러 아이돌 작업에 참여했는데 이제는 몇 년째 같이 일하는 담당자분이 “실장님. 이제는 제가 척하면 척해주실 수 있으시죠?”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일이 된다는 건데요. 꼭 디자인 결과물에만 국한하지 않고 업계 특성상 새벽이나 밤샘 작업이 필요한 상황을 서로 이해하고 있으니, 호흡이 잘 맞는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Way V 〈Take Over The Moon〉, 미니 앨범 2집 중문 레터링, 2019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함께 한 작업은 건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북 디자인, 포스터, 레터링 등 단단하고 까맣고 진중한 작업이 많은데요. 엔터테인먼트 관련 작업은 오히려 생각보다 더 실험적일 때가 있어요. 가볍고 톡톡 튀는 재미가 있어서 환기도 되고요. 무엇보다 아주 작은 작업이라도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면서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부분이 장점이죠. 노출이 많이 되니까 대외적으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 말하기에 좋아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답니다.  

NCT DREAM 정규 3집 〈Broken Melodies〉 타이틀  앨범 커버 디자인, 2022 
NCT 127 정규 4집 리패키지 〈Ay-Yo〉 타이틀 디자인, 2023
NCT 127 정규 4집 〈질주 (2 Baddies)〉 그래픽 디자인, 2022

이제 PaTI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PaTI 더배곳의 진수 과정을 이수했는데, 어떤 과정인지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이미 홍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PaTI에 들어온 이유도 궁금해요. 

제가 PaTI에서도 물성을 중시한 작업을 했는데요. 이렇게 물성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대학원 졸업 작업이었어요. 「김기림 시의 시각화 실험」이라는 논문에 실린 작품인데요. 김기림 시인의 시에서 느껴지는 심상을 구체시처럼 시각화하고, 종이, 인쇄, 제본, 후가공 등의 촉각에 신경을 썼어요. 결국 시각과 촉각을 결합해 책 한 권에 하나의 시를 담은 여러 권의 책을 만들게 됐죠. 김기림 시인을 선정한 이유는 시에 이미지 요소를 도드라지게 표현했기 때문이에요. 그 중 「바다와 나비」라는 시는 1930년대 근대 문명을 선망하던 문학인들이 좌절을 겪으며 날개가 찢기고 상처받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저는 이 시를 다룬 책이 어떤 심연의 바다이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장 한장 칼로 자르고 제본했죠. 내부로 깊어지는 느낌을 담기 위해서요. 서체도 두꺼웠다가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콘셉트로 진행했고요. 7~8권 정도의 책을 만들었는데 몇몇 책은 이미 손상됐고, 「바다와 나비」 책도 뉴욕TDC에서 수상한 후 여러 나라에서 전시하는 과정에서 훼손이 됐더라고요. 어찌어찌 복구는 했는데 책을 열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요. (웃음)

대학원 졸업 작품 시인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구체시집, 2018 

건하는 대학교 학부도 나왔고, 대학원도 나왔고, PaTI까지 경험해 봤어요. 다른 사람보다 PaTI의 특장점이 더 명확하게 보일 것 같아요.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점은 제도권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누군가가 저에게 지시하거나 제안하는 부분보다는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끔 유도하고, 그런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 준다는 거예요. 더불어 고민을 통해 나온 여러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게 참 좋았어요. 충분히 고민하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떤 해답을 주지 않아도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도움이 됐어요.

혹시 기억나는 스승이 있을까요?

두 분이 생각나요. 비슷한 결의 스승인데요. 찬신과 병조 스승이에요. 제 고민에 대해 해결하거나 답을 내려주진 않았지만 계속 묵묵하게 경청하고, 진지하게 답변한 분들이죠. 주제가 디자인이든, 디자인하면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든, 수업 외에 그런 의견을 주고받는 게 무척 좋았어요.

PaTI 더배곳 박찬신, 윤성서 스승 수업 결과물 〈1000×〉, 2019
PaTI 더배곳 김병조 스승 수업 결과물 〈SNS를 위한 워크샵 포스터〉, 2019

PaTI에서 보낸 1년의 경험은 건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PaTI를 다니면서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디자인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건강하게 디자인하는 게 맞는 걸까?” 저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배우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더라고요. PaTI가 지리적으로 고립된 특성 때문일 수도 있는데요. 고민이 진짜 많아져요.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이렇게 고민하면서 한 번 더 쉬어가고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한 템포 느리게 가려는 생각과 행동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해요. 더불어 예전에는 무조건 작업 잘하는 사람, 성공한 사업가나 디자이너를 꿈꿔왔어요. 동경했고요. 요즘은 방향이 많이 달라진 느낌이에요. 컴퓨터 앞에서 좋은 작업을 기계처럼 뽑아내는 게 마냥 괜찮지 않을 수 있겠다 싶은 거죠.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면 거기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져요.

혹시 PaTI를 다니는 배우미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요?

제가 정말 못했던 것들이요.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하고 웃으면서 맞이하는 게 되게 어려웠어요. 근데 오히려 졸업 후에는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사귀게 되었어요. 마친 배우미들, 배우미들, 스승들, PaTI에 잠깐 몸담았거나, PaTI와 관련된 분들까지요. 배곳에 다닐 때 사람들과 폭넓게 교류하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많이 보고,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함께 해보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 전시 아이덴티티  그래픽 디자인, 2023

요즘 진행한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일까요?

정말 최근에 마무리했는데요.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관련 전시 그래픽을 작업했어요. 처음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타이틀이 너무 강렬하다는 거였어요. 서울에서 열면서 많은 분이 보았고,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느낌을 최대한 희석하려고 노력했어요. 학예사분이 정한 ‘사계’라는 타이틀에 맞춰서 이건희 컬렉션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 쪽에 좀 더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레터링도 직접 했고, 현장에 배치하는 사인물도 꼼꼼하게 작업하면서 서로 만족하는 선에서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작업하면서 특별히 중시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을 하면서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 혹은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라는 기준이 있다면요?

요즘 제가 고민한 게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할 때 상대방을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꼭 단단한 논리나 어려운 지식을 활용하기보다는 쉽고 간단하게 바로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면 성공이에요. 감각적인 미감만으로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고요. 다만 그 바탕은 제 스스로의 납득이에요. 제가 납득이 안 되면 작업이 되게 어렵게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일단 작업을 수월하게 시작하고 즐겁게 하려면 자신을 먼저 설득하는 게 필요해요. 그래야 클라이언트도 설득할 수 있겠죠.

아까 잠시 대화를 나눴을 때 “디자인 말고는 할 게 없다. 여가 시간에도 디자인한다”고 말해서 당황했는데요. (웃음) 혹시 디자인에서 벗어날 때 어떤 걸 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식물을 좋아해요. 근데 많이 죽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식물들만 돌보고 있어요. 어떤 작업을 특별히 하지 않을 때는 《Magazine Q.t》에 관한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등 잡지를 잡고 있는 게 즐거운데요. 요즘은 뭔가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그래서 일렉트릭 기타로 캐논 변주곡을 치는 걸 목표로 기타를 배워보려고 합니다. 여름에 학원을 다닐 거예요. (웃음)

요즘 들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업무의 효율화요.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업무가 쌓이고, 규모도 늘어나니까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감당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야근하고, 밤샘하고, 주말 작업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람을 써야 하는 걸까, 혹은 시간대를 나눠서 몇 시 이후부터는 작업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패턴을 바꿔야 하나 고민이 들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네요. 당장 급하게 작업물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클라이언트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면서 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데 저만 오후 6시 넘었다고 일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래서 업무 분배에 대한 것이 가장 큰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건강을 위해서 식단 조절이나 운동 같은 걸 따로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가장 문제에요. (웃음) 러닝머신을 구입해도 그때뿐이지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더라고요. 근데 요즘 건강이 진짜 신경 쓰이거든요. 손목이 아프거나 목, 어깨, 허리 쪽에 통증이 올 때면 문득 걱정돼요. “내가 계속 디자인할 수 있을까?” 젊을 때는 밤새고 디자인하는 게 열정이고, 재미였는데, 이제는 몸이 아파서 디자이너로서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영양제라도 챙겨 먹으며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건하가 설정한 삶의 방향과 태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이건 디자인과 별개인데요. 제가 마음에 담아두는 말이 있어요.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입니다. 어렸을 때 실수한 걸 만회해 보려고요. 예전에는 사람 대하는 게 무척 서툴렀거든요. 사실 하나 더 있는데, ‘가족에게 화내지 말기’예요. 이제 벌써 10년쯤 된 것 같아요. 인간관계를 넘어. 일하는 데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느낌입니다.

혹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요?

저는 프린트 기반의 작업을 주로 하는데요. 요즘 영상, 웹, 3D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제가 신기술과 툴을 연마해서 새로운 걸 만드는 성향은 아니에요. 기존에 했던 걸 꾸준히 하는 편이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약간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지금 시대가 원하는 기술에 대해 디자이너도 함께 발맞춰 가는 시점에서 제가 뒤에 있다고 느끼는 거죠. 여기에 대해 제가 내린 결론은 ‘하고 있는 걸 계속 잘하자. 내가 잘하는 걸 잘해보자’예요. 간단한 영상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웹이나 3D, 코딩 같은 건 못하겠더라고요. 안 맞는 것에 대한 미련은 빠르게 버리고,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언젠가 레트로 열풍이 부는 것처럼 종이가 다시 각광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웃음) 그때를 위해 계속 종이를 다루며 책을 만들고 잡지를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몇 년 후의 모습이 어떻게 되길 바라나요?

일단 《Magazine Q.t》가 자리를 잡아서 잘 굴러가면 좋겠어요. 그 속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고요. 작더라도, 느리더라도, 하고 싶은 작업을 지속하며 꾸려나갈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요?

요즘 핸드폰만 켜도 눈에 보이는 게 너무 많아요.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만 봐도 그렇죠. 남들과 비교하는 건 잠시 내려놓고 자기가 하는 일을 묵묵하게 지속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말처럼 쉽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두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무척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히 말해주세요!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서 너무 반가웠고요. 여러분, 《Magazine Q.t》 3호가 발행됐으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4호도 올해 안에 선보이도록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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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제 ‘PaTI.is(일러스트레이션)’, ‘PaPA(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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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13.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평화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한수현, 천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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