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어느새 11월이 코앞입니다. 여러 일이 있었던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어요. 옛날에는 11월 초를 겨울의 시작이라 생각했다고 해요. 이제 겨울이 닥치고 있으니 슬슬 자기만의 월동준비를 궁리할 시간입니다. 이번 ‘마친배우미’ 스물여섯 번째 소식의 주인공은 바로 은정(이은정)이랍니다. 은정은 PaTI 한배곳 2기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상의 매력에 빠져 벌써 영상 경력이 15년입니다. 자기 본명을 딴 이은정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대표님이에요. 선거본부의 홍보국장을 세 번이나 맡기도 했죠.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맞는 성과물을 내기 위해 최적의 방법을 고민하고, 그에 알맞은 도구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은정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번 뉴스레터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은정.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워요. 저희 이번이 첫인사죠?

맞아요. 그래서인지 조금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어요. (웃음)

지금까지 만난 마친배우미는 면식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저도 그래요. 하하. 그럼 먼저 은정에 대한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저는 한배곳 2기 졸업생이고. 지금은 ‘이은정 프로덕션’이라는 영상 프로덕션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와. 프로덕션 이름이 너무 멋있어요. 외국에서는 자기 이름을 회사에 적극적으로 쓰던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은정의 본명을 회사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배곳에 다닐 때부터 ‘123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친구들과 함께 활동했거든요. 졸업 후에는 123 컬렉터 활동을 마무리하고 저만의 프로덕션을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평소에 자주 가는 장비대여업체가 있는데 매번 들를 때마다 사장님이 썩 기분 좋지 않은 말씀을 하셨어요. ‘장비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느냐’, ‘어디 가서 더 배우고 와야 하는 거 아니냐’, ‘그쪽 회사 사장님은 누구냐’ 등등. 스트리밍 장비를 대여하러 갔을 때 이런 이야기를 또 들으니까 ‘누가 봐도 내가 대표라는 걸 알 수 있는 이름으로 회사 명을 지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 2020년쯤 회사를 만들게 되었죠.

배곳에 다닐 때부터 영상을 했으면 경력이 상당하네요!

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게 19살 때였으니 이제 영상 작업 15년 차랍니다. 저는 하자작업장학교를 나왔는데요. 처음 들어가면 1년 동안 음악, 디자인, 영상 등 모든 커리큘럼을 다 겪어보고 그 이후 자기가 더 배우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저는 영상이 좋아서 영상방에서 활동했어요.

영상을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하자작업장학교를 다니기 전 일반 고등학교에서 1년 정도 있으면서 연극부 활동을 했는데, 그때 이야기를 다른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많은 대본을 읽고 이번에는 어떤 연극을 할 것인지 단원과 토론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각자 동일한 대본을 보더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게 신기했죠. 사실 처음 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했을 땐 연극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상을 만들다 보니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연극은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면 휘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영상은 그렇지 않잖아요. 게다가 감독이 의도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거나 오히려 숨길 수 있는 창작의 지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한편 힘이 강한 만큼 위험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창작자의 메시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나는 왜 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깊이 고민하기도 했고요. 사실 제게 영상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에요. 기본적으로 저는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맞는 성과물을 내기 위해 어떤 게 가장 최적의 도구 혹은 방법일까 고민하고, 그에 따른 알맞은 도구를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아요. 작년에는 이진경 작가님의 전시를 코디네이팅했는데요.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연히 이진경 작가님 댁에 갔다가 전시가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전시 일정은 정해져 있고 해야 할 일은 많고…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능한 한 작가의 의도를 전시로 잘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어떤 방법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전시를 준비하는지 곁에서 바라보니까 그냥 휘발하는 게 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카메라를 들었어요. (웃음) 만든 영상은 전시에 같이 걸렸고요. 어찌 보면 제게 가장 손쉬운 매체가 영상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먼먼산을 위하여〉 전시 현장에서
〈먼먼산을 위하여〉, 2022
이진경 작가의 제5회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전을 위한 영상

졸업 후 정당의 홍보국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여기에서는 영상 작업에 집중한 건가요?

처음에는 영상을 몇 편 만들어달라는 외주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당시 그쪽에서 만들던 영상을 보니까 제 마음에 너무 안 들었어요. 핵심 메시지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청년 여성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낸다는 정당의 메인 슬로건이 ‘감속 도시’였죠. 저는 환경 의제와 페미니즘 이야기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그 흐름을 효능감 있게 서포트하는 정치 집단이 부재하던 차였거든요. 특히 선거에서는 핵심 메시지가 중요한데 당시 선본에는 그게 없었어요. 한 편의 영상이라도 이 선거에 도움이 되게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메시지가 무엇인가’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홍보국장까지 맡게 돼버렸네요.

홍보국장으로 활동할 때는 어땠어요?

언제나 제가 맡는 선거본부의 구성원은 거의 제 또래였어요. 여성의 비율이 다른 정당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고, 대부분 디자인과 영상을 하던 사람이었고요. 그래서 전문가 그룹, 의견을 주는 그룹을 따로 구성하긴 했지만요. 낡은 정치가 지겨운 저와 같은 주변 사람을 설득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런 후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대외 메시지를 만들었어요. 현수막을 만들 돈이 부족해서 현수막 문구에 대한 의견을 SNS를 통해 받았던 캠페인이 기억나네요.

2018년 녹색당 서울시장 선거본부 홍보국장 활동 모습

현수막 제작비가 없으면 문구를 외부에서 받아도 소용이 없지 않나요? 

아, 외부라는 건 전문가 그룹이 아니라 정당 밖의 대중을 의미해요. SNS를 통해 지금 현수막을 만들 돈이 없는데 혹시 원하는 문구가 있으면 현수막에 그대로 집어넣어 줄 테니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함께 해달라고 홍보했거든요. 놀랍게도 이틀 만에 선거후원금으로 약 3000만원이 모였답니다.

와, 굉장한데요.

결국 저는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결과를 얻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홍보국장으로서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 영상 작업자로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영상 매체로 표현하는 일, 어떤 전시를 제대로 운영하는 일까지 할 수 있었고요. 다만 알맞은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에는 정성적인 평가와 정량적인 평가가 동시에 작용해야 하겠죠. 그 성과를 판단하기 위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 제게 가장 익숙한 도구가 영상인 것 같아요.

2020년 서대문구 갑 국회의원 선거본부 홍보국장 활동 모습

아무래도 15년 넘게 영상 작업을 했으니까요. (웃음) 근데 영상에 익숙하면 어떤 점에서 좋나요?

사실 영상 말고 다른 것에 익숙한 적이 없어서 대답하기가 좀 난감한데요. 음…특화된 아르바이트를 잘 할 수 있다? 제가 PaTI 다닐 때 웨딩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단기적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죠. 지금도 영상 덕분에 그나마 먹고사는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것 같아요. 비교하기 애매하지만, 제 사촌 동생이 미용을 하는데요.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미용이나 영상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하나를 깊게 파면 큰 도움이 되니까요. 더불어 기술과 창작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예요. 제가 영상을 좋아하는 마음과 열정까지 기술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거든요. 여러 방면으로 꾸준한 노력과 탐구 없이 영상을 계속 찍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에요.

이은정 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어떤 영상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가장 최근까지 작업했던 게 아무래도 기억에 제일 많이 남으니까…(웃음) 지난 7월에 시작해서 10월에 끝났으니 약 3개월 정도 걸렸네요. 개관을 앞둔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인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가 진행한 ‘SeMA 피칭 프로젝트’라는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아카이브 자체를 다루는 기관인데요. 여기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하는데 저는 ‘해제연구’라는 분야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어요. 사실 해제연구가 되게 처음 듣는 단어잖아요. 그래서 기관 쪽에서도 ‘해제연구란 무엇인지’를 주제로 영상을 만들려고 했고, 영상 기획부터 참여해서 여러 버전으로 영상을 제작했다가 얼마 전에 끝냈습니다. 드디어 털었어요. 하하. 영상을 만드는 내내 재미있었어요. 보관서고라고 실제 아카이빙이 존재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있는데요. 중형 필름, 오래된 아날로그 매체를 보관한 공간에서 큰 흥미를 느껴서 촬영 후 영상을 만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오래 일한 분 입장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인 거예요. 관련자가 아닌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상 소스이지만, 관련자가 보기에는 어수선하고 산만한 현실인 거죠. 그러던 와중에 해제연구가분이 작성해서 보내주신 내레이션 원고를 보고 이에 충실한 영상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방향을 바꿔 내레이션을 쓰신 분이 실제 녹음에도 참여하고, 영상의 콘셉트도 그분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으로 풀었어요.

사운드도 직접 만들었다면서요?

이번에 제가 욕심을 좀 부렸어요. 효과음 중 필요한 경우에는 영상을 보면서 녹음하기도 했고요. 마우스 클릭이나 스크롤할 때 나는 작은 소리 같은 게 대표적인 예죠. 그리고 영상에 깔리는 BGM의 레퍼런스를 찾았는데 딱 들어맞는 게 없더라고요.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이라 저작권 문제에 예민하기도 했고,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활용해 보려고 하니까 영 이상한 느낌이 가시질 않더군요. 해제연구가님의 모니터를 관객이 직접 보는 느낌으로 진행한 영상이라 일단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게 제일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거슬리지 않으면서 영상에 잘 녹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만들었어요. 아쉬운 점은 당연히 많지만요.

설명을 들으니까 궁금해지네요. 아직 개관 전이라 볼 방법이 없겠죠? 

아닙니다. 유튜브에 따끈따끈한 상태로 올라가 있어요. 서울시립미술관 유튜브 계정에서 ‘세마피칭파일럿’이란 영상을 찾아보시면 지금 제가 말한 영상을 보실 수 있답니다. 갑자기 광고가 되어서 되게 민망한데요. 사운드는 제발 대충 들어주세요. 이번 일을 겪으며 사운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사운드를 알려주실 분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대신 저도 영상 편집하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재능교환!!

세마피칭 파일럿: 해제연구 - 또 하나의 목소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연구, 2022

은정은 PaTI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입학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저는 입학 전 충북 괴산의 문화예술교육단체에서 5년째 일하는 중이었어요. 어린이와 사진 수업을 하거나 문해학교에 다니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는 등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죠. 어느 날 문득 가르치기보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PaTI를 알게 되었고 서울살이를 걱정하며 지원했던 기억이 나네요.

은정이 한배곳 2기잖아요. 지금의 PaTI와는 많이 달랐던 때였죠. 잊을 수 없는 다양한 기억이 많을 텐데 공유해줄 수 있나요?

이상집이 생긴 일, 채집 여행, 타이포잔치에서 책벽돌을 만들던 일, SeMA에서 열린 《날개.파티》 전시 등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이 많은데요. 뭐니 뭐니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바로 2기 졸업여행입니다. 태국에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심지어 얼마 전에 예지를 만나서 졸업 10주년 기념 여행을 가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답니다. (웃음) 그 당시 여행팀이었던 예지, 찬혁, 하연, 리루가 그대로 여행팀을 맡아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생각난 김에 다시 앨범을 뒤져 보니 그때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참 행복했어요. 근데 공개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많이 헐벗고 있어서…그래서 2기 친구들이라면 알아볼 사진 한 장을 공유해봅니다. (하하) 

한배곳 2기 친구들과 함께 한 PaTI 졸업여행, 태국, 2018
PaTI 마친보람 맺음전 《유연한 공격》 전시장 앞에서, 2017

지금도 계속 생각나는 수업이나 스승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김건태 스승의 ‘내공간 멋짓기’예요. PaTI에서 했던 첫 수업이죠. 4년간 쓸 책상과 의자를 직접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 버려진 가구를 그래도 쓰기도 하고 해체조립해서 새로 만들기도 했어요. 그때 제가 4조였는데요. 저희 모둠 이름이 ‘불사조’였던 게 갑자기 기억나네요. (웃음) 황폐한 현장에서 우연히 가구를 발견하는 기쁨과 제게 알맞도록 다시 만드는 과정 모두 참 재미있었어요. 내공간 멋짓기의 연장선에서 채집 여행을 다녀왔고, 이화여대에서 버려지는 일체형 책걸상을 어마어마하게 주운 후 고쳐서 판매했던 일도 기억에 남아요. 두 번째는 유명상 스승의 ‘어떤 이미지’인데요. 제가 어떤 이미지를 좋아하는지 집요하게 집중하고 여기에서 시작한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수업 과정도 좋았지만, 개별 면담 때 유명상 스승이 했던 ‘좋은 사람이 좋은 작업을 한다고 믿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죠. 지금도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친배우미로서 PaTI의 장단점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이런 게 제일 어려운데요…음…장점이자 단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꼽고 싶어요. 이미 완성되어 굳어져 있지 않다는 거죠. 배우미 입장에서 당시 PaTI는 많은 것이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 목소리가 PaTI를 구축하는 데 실제로 많이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교육환경을 제공받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 나갔다는 사실은 장점이에요. 물론 어렵고 힘들었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한배곳 수업중 친구들과, 2015
이상집 멋짓기 워크숍, 2016

PaTI에서의 경험은 은정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결과물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웠고, 그걸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웃음)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법의 확장이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방법인 것 같거든요. 그들의 목적을 매체로 드러내는 게 제 일이니까요. PaTI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만든 게 원래 의도대로 잘 전달되었는지 매번 확인해 볼 수 있었어요. 말과 글을 통해 의도를 설명하는 훈련은 제 경제 활동에 큰 도움이 됐죠. 동시에 PaTI에서의 경험이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도록 큰 영향을 주었어요.

은정에게 PaTI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지 궁금해요. 

PaTI는 제게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준 곳이에요.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와 스승을 바로 PaTI에서 만났죠. 저는 혼자서 잘 사는 것보다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다른 속도로, 자기 방식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는 어떻게 살고 싶고 저만의 방식은 무엇인지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PaTI를 다니는 배우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말을 해도 꼰대처럼 보일 것 같아서 걱정인데요. 그냥 정직하게, 성실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게 최고입니다! (웃음)

PaTI 재학시절 은정이 친구들과 함께 ‘123 컬렉터’ 이름으로 선보인 한복 가방.
이 가방은 2016년 AGI(국제그래픽연맹) 서울대회 공식 가방으로 선보인 것으로, 버려진 한복 천으로 만든 리사이클링 작업이다.
‘123 컬렉터’ 찻잔 받침 시리즈, 2019

은정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이켜보면, 핵심은 문제 해결에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디자인의 정의를 두고 ‘문제 해결’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은정은 디자이너로서 계속 성장하는 것 같아요. 

세상의 많은 일, 아니 어쩌면 거의 모든 일이 ‘문제해결을 어떻게 할까’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 같아요. 그 결과를 평가하고 과정을 기록해서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우리 모두의 일이 아닐까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디자이너로서, 또 한 명의 동료 시민으로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정과 이야기해보니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끌어가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크게 느껴요. 혹시 자신이 설정한 삶의 방향과 태도가 있을까요?

‘가능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제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삶의 방향과 태도는 이 정도 같은데요. 아! ‘나를 챙기지 않고는 남을 챙기려고 하지 않는다’가 있었네요. 정치 활동을 하며 새롭게 추가한 제 삶의 방향과 태도입니다.

요즈음 생각하는 미래 계획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몇 년 후 은정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제 MBTI는 극강의 P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인지 미래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진 않아요. 막연히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유학을 가볼까 싶기도 하고요. 몇 년 후 저는 아마 자외선 때문에 주름이 더 늘어났을 테고, (웃음) 체력을 아끼면서 어떻게 예전처럼 신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까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문제화: 공존을 위한 정치의 모색’ 온라인 스트리밍 현장, 2022

은정이 지닌 꿈이 궁금해요. 앞으로 은정은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나요?

계속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성취하고 싶은 것은…글쎄요. 먹고 싶은 걸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 가끔 기분 내고 싶을 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친구와 가족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해주는 게 가능할 정도의? 그 정도 환경을 바탕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잘 맞춘 삶을 사는 게 꿈이에요.

은정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궁극적인 미래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탄소 중립을 실천하고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이 50%인 미래. 근데 이건 단순히 이상적이어서는 안 되고 꼭 실현해야 할 미래가 아닐까 싶어요. 말로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정말 페미니스트인 대통령을 보고 싶어요. 거대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평균 재산이 40억원이 아니라 저와 비슷한 소득을 가진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국회…가능하면 좋겠어요.

뉴스레터로 보기만 하던 마친배우미 인터뷰를 직접 해보니 소감이 어때요?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매번 인터뷰하는 입장에서 도리어 당해보니 쉽지 않네요. (웃음) 질문에 답하며 자기를 정리할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행복의 정의가 모두에게 다르긴 하지만, 은정은 지금 행복한가요?

가끔 불안하고, 종종 무기력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행복해요!

마지막으로, 못 한 말이 있다면 마음껏 해주세요!

모두 건강하세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  인터뷰 영상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제 ‘PaTI.is(일러스트레이션)’, ‘PaPA(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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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7.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한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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